어두웠던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치는 가운데 묵은해는 훌쩍 이별을 고하고 새 아침을 맞는다. 차가운 얼음장 아래서도 온갖 생명은 숨을 쉬며 봄날을 기다리지 않는가. 어느 시인이 읊었듯,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 지나간 시절에 자신을 옭아매면, 새로운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을 터이다. 지난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두라는 격언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세상살이가 험난하다고는 해도, 여기저기 어려운 이웃에게 미치는 온정의 손길은 그칠 줄 모른다. 아하,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 아니겠는가. 고맙지 아니한가. 새해를 좀더 따스하게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싶다. 지면으로나마 봄날을 꿈꾸듯 소망을 품고자 한다. 이런 일들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찌 손을 놓고 그냥 모른 체하랴.

우리가 꿈을 꾸면, 넘지 못할 산도 없겠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 뭔가를 이룩하는 실천이 아름답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서두르지 말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성어처럼 산을 옮겨보자. 남에겐 어리석게 보여도, 한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 언젠가 목적을 달성하자.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어여쁘게 여기기 마련이다.

성경은 소망은 물론 사랑과 희생을 얘기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장) 한 알의 밀알이 땅에서 썩어야 소중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밀알이 싹을 틔우려면 땅에 묻혀 죽고 썩어서 거름으로 작용해야 새싹이 돋아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결실을 거둔다. 목숨을 바쳐 숭고한 희생을 하는데, 어찌 세속적인 판단을 내리며 폄하하겠는가. 희망사항과 사랑의 정신을 일깨우는 명언이다.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민들에겐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희망을 안겨주느냐, 아니면 좌절따위를 경험하게 하느냐 등 중차대한 선거다. 여야 모두 후보들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내며 사활을 거는 모습을 띤다. 그런데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다. 최종 선택이야 유권자 몫이라고 해도, 씁쓰레한 심정을 가누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뽑을 수밖에 없고, 당선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아야 한다. 부디 밀알이 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각오로 선거에 임하길 후보들에게 요청한다.

새해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을 모두 함께 헤쳐나가는 힘을 얻었으면 싶다. 강추위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요즘, 마음이나마 서로 기댈 수 있었으면 한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우리 기운을 곧추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바람에도 따뜻함을 품고 있듯,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상기하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