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허문회 박사가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올려졌다. 허 박사(1927~2010년)는 '통일벼'를 개발한 농학자다. 지금이야 품종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통일벼는 한국 농업사에 새 장을 연 엄청난 성과였다. 통일벼 보급으로 한국은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에서 벗어났고, 자나 깨나 열망했던 식량자급을 달성했다.

허 박사가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로 파견을 자청해서 새로운 벼 품종 도전에 나선 해가 1964년이다. 허 박사는 세 가지 품종을 삼원 육종하여, 1969년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새 품종을 공인받았다. 한국 정부는 1971년 이 품종에 '통일벼'라는 이름을 붙였고, 1972년부터 대대적인 보급에 들어갔다. 불과 3년 후(1975년) 한국은 식량 자급을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통일벼는 인디카 계열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밥맛은 별로다. 초기에 농가들이 통일벼를 꺼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봄마다 식량이 바닥나는 농가가 속출하는 마당에 이런 불평은 배부른 투정이었다. 혼식과 분식이 강력한 국가 시책이어서,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혼분식 검사까지 하던 시절인지라, 식량자급 달성은 '한국인의 상상이 현실이 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통일벼는 결국 밥맛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밥맛 좋다는 추청(아키바레) 등 일본계 벼 품종이 점차 통일벼 재배지를 대체했고, 1990년쯤 되면 통일벼는 한국의 논에서 사라졌다. 특히 경기미를 생산하는 재배지에서는 추청과 고시히카리를 심는 곳이 계속 늘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2003년부터 병해충 저항성도 강하고, 수확량도 많으며, 밥맛 또한 좋은 신품종 개발에 착수했다. 10년 공을 들인 끝에 경기도농업기술원은 2014년부터 추청벼보다 단위 수확량이 50㎏ 많고, 밥맛은 월등한 품종 '참드림' 보급에 나섰다. 아울러 경기북부에 특화된 중생종 '맛드림', 추석 전 수확이 가능한 조생종 '정드림'도 잇따라 개발했다. 2018년 경기도 재배면적의 50%를 차지했던 추청은 2021년 30%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참드림은 5%에서 12.3%로 늘었다.

허문회 박사가 분투했던 예전 벼 품종 개발은 오늘날 농업인과 수요자가 직접 품종 육성에 참여해 지역특화품종을 개발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농촌진흥청과 이천시가 함께 한 '해들'과 '알찬미', 경기도농업기술원과 고양시의 '가와지1호',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평택시의 '꿈마지' 등이 그 예다. 이 외에도 6개 시군이 품종 육성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데, 외국쌀을 일정량 의무수입해야 하는 악조건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내년에도 이들 경기미가 우리 밥맛을 책임진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