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잘 지켜지는 세상이면 어디서든 살 만해
▲ 간호윤의 18세기~19세기 실학 시리즈. ‘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를 연재하는 데 도움을 준 필자의 저서. <아! 19세기 조선을 독讀하다> 표지.
▲ 간호윤의 18세기~19세기 실학 시리즈. ‘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를 연재하는 데 도움을 준 필자의 저서. <아! 19세기 조선을 독讀하다> 표지.
▲ 간호윤의 18세기~19세기 실학 시리즈. ‘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를 연재하는 데 도움을 준 필자의 저서. <아! 나는 조선인이다> 표지.

'OOO 대선후보 측은 “국토보유세도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표변하는 OOO 후보의 공약, 국민들은 불안하고 무섭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최대 일간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의 기사이다. 한마디로 야당이나 이를 인용한 신문사나 (비록 세상에서 오용하더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하거늘) 저급한 수준이 도긴개긴이다. '표변(豹變)'은 저기에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변은 '표범 표(豹)' 자와 '변할 변(變)' 자로 '군자표변'에서 나왔다. 즉 가을이 되면 표범의 묵은 털이 빠지며 새로운 털이 나 털가죽이 아름답게 변하듯, 군자가 자기 잘못을 고쳐 옳은 길로 빠르게 변화한다는 말이다. <주역(周易)> 64괘(卦) 중, 49 '혁괘(革卦)'에 보인다. 혁(革)은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리는 것처럼 '변화'를 뜻한다. 원문에는 '용과 범은 대인 상(象)이니, 대인호변(大人虎變,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함) 군자표변(君子豹變)이고 소인혁면(小人革面, 소인은 얼굴빛만 변함)'이라 했다.

대인호변은 호랑이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을 갈고 가죽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처럼, 군자표변은 표범의 털이 바뀌듯, 천하를 혁신하고 세상의 폐해를 제거하여 모든 것이 새로워짐을 뜻한다. 소인혁면은 큰 그릇은 못 되니 얼굴만이라도 고쳐 윗사람의 가르침을 받으라는 의미이다. 선인들은 모두 변화를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저들은 긍정의 '변할 변(變)' 자를 그 반대로 해석해 버렸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자칭 보수(保守, 보전하여 지킴) 야당이요 보수 제1언론이다. 한순간도 멈춤 없이 변하는 세상, 한 나라를 보전하여 지키려면 끊임없이 변하고 변해야만 한다. 못하겠으면 소인혁면이라도 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부패하여 썩은 내가 온 나라에 진동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 '복거총론'을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선생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의 조건을 네 가지 즉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들어서 설명하면서 이 중 하나만 모자라도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지리: 선생은 “지리(地理)를 논하려면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에는 들판과 산 형세를, 이어 흙빛과 물 흐르는 방향과 형세를 본다”고 하였다. 사람이 살 집터의 조건으로 자연환경을 들었으니 풍수지리학이다. 현재 우리가 교통이 발달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으려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선생이 말하는 삶터는 자연과 사람이 풍수학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땅이다.

생리: 먹고사는 문제이니 경제지리학이다. 선생은 사대부일지라도 먹고사는 생업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선생은 생리의 조건을 “땅이 기름진 게 첫째이고,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교류시킬 수 있는 곳이 다음”이라 한다. 특히 배와 수레를 이용하는 용선(用船)과 용거(用車)는 생산물을 유통하는 운송 수단을 콕 집어내는 말이다. 요즘 쓰이는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라는 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인심: “인걸(人傑)은 지령(地靈,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이라는 지리인성학이다. 당연히 인심(人心)에 대한 기록을 두루 적었다. 선생이 강조하는 것은 서민과 사대부의 인심과 풍속이 다른 점과 당쟁의 원인 및 경과였다. 선생은 사대부와 당파성으로 인심이 정상적이지 못함을 통탄한다. 이는 지금도 이어진다. 우리 정치에 지방색을 이용하는 정치꾼들이 있음은 그 반증이다.

산수: 곧 산수지리학이다. 선생은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넉넉하지 못하면 역시 오래 살 곳이 못 되고, 지리나 생리가 다 좋아도 인심이 좋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고 또 근처에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호연지기를 기르고 마음을 너그럽게 펼 곳이 없다”고 한다.

결국 이 네 가지 조건이 다 구비되어야 이상적인 살 곳이라 하였지만 이런 곳을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는 '사람이 살 곳(可居處)'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택리지> '발문' 마지막 “아! 실(實)은 관석화균(關石和勻)이요, 허(虛)는 개자수미(芥子須彌)이다. 후세에 반드시 분변하는 자가 있을 게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관석화균은 <서경> ¨하서〃 '오자지가'에 나오는 말로 백성이 사용하는 저울을 공정하게 한다는 의미이니, 곧 법도를 잘 지키도록 한다는 말이다. 선생은 이 관석화균이 실(實)이라 한다. 개자는 아주 작은 겨자씨요, 수미는 아주 커다란 산이다. 둘 사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이는 그른 허(虛)라 하였다. 자기 죄는 겨자씨인데 벌은 수미산처럼 받았다는 선생의 속내가 들어가 있다.

결국 선생이 말하는 좋은 땅은 '개자수미가 없는 관석화균한 세상이면 어디나 살 만한 땅'이란 귀결이다. <택리지>는 지리인성론을 다룬 책이지만 그 속엔 저러한 정치가 숨겨져 있다. 당동벌이(黨同伐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익에 의해 내 편과 네 편을 가름)만으로 정치를 하는 이 시대 정치꾼들은 새겨볼 말이다.

 


3년여에 걸쳐 게재한 16명의 실학자의 글을 이번 회로 마칩니다. 그동안 '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를 애독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관석화균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2022년 1월부터는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으로 제명을 달리하여 찾아뵙겠습니다. 모쪼록 새해에는 코로나도 물러가고 독자 여러분들 가가호호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