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이 있다. 이 계절에 낙엽은 시들어 흩날리고 바람에 누운 풀들은 상처를 널어 말린다. 낯익은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하는 아픔만이 가슴을 채울 때, 우리는 낮도 저녁도 아닌 쓸쓸한 공허 속에서 벌거벗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음을 느낀다.

사람의 생에도 삶도 죽음도 아닌 시절이 있다. 시든 추억을 널어 말리며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고독의 순간이 존재한다. '겨울을 이길만한 눈동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눈을 부릅뜨지 않고서야 어찌 겨울을 이겨내겠는가. 그때를 대비해 우리에게는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시간을 응시하는 직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차가운 무상함 속에서도 주고받는 따뜻한 시선이라는 데 동의한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인생에도 '11월의 고통'이라는 씨앗이 심어져 따스한 봄이 우리 곁에 온다는 사실이다.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