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은 꼭 바다에 가고 싶어진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드넓은 품이 주는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만큼 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쌓였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8년 연말을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릴 적 강원도에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동해만이 주는 시원함이 있다는 걸 알기에 다른 바다보다 강원도 동해안을 찾게 된다. 지난 9월, 내게 쉼이 필요했다. 나를 숨 가쁘게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고 이러다 말겠지 했건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것을 쉽게 떨칠 수 없을 것 같아 전문의를 찾았다. 심리 검사 결과, 생각보다 불안 수치는 높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마음이 힘들더라도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병의 정도로 볼 수 없고 스스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좋은 것을 보고 듣는 게 가장 큰 치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한 병도 아니며 약도 필요 없다는 말에 되레 큰 용기를 얻었다.

그날 저녁, 무작정 동해안에 도착하는 기차표를 알아봤다. 예약 가능한 목적지는 강원도 '묵호'라는 곳이었다. 처음 가본 묵호는 드넓은 바다가 논골마을을 품고 있는 정겨운 바다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에는 수산물 경매 소리가 활기차게 들려오는 수산시장도 있었다. 차를 빌려 묵호항~어달해수욕장~망상해수욕장~강릉 강문해변~경포호~양양 하조대 코스로 동해안 드라이브를 했다. 사실 정해둔 목적지는 없었으나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뻥 뚫린 도로를 달리다 보니 돌아가기 아까워 양양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다른 길로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나 빠른 속도로 30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마음은 조급해졌고 나 자신이 너무 작은 존재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마치 고속도로, 큰 대로만 길인 것처럼 시야는 좁았고, 불안했고, 그래서 두려웠다.

이번 여행에서 고속도로로 달렸다가 국도로 달렸다가 해안도로를 달렸다가 다양한 길을 가보면서 삶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고속도로를 오랜 시간 탈 수 있다. 누군가는 구불구불한 국도로 오랜 시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지가 명확하다면 고속도로로 가든, 국도로 가든 아무 상관이 없다. 고속도로는 주변을 볼 여유는 없어도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게 해줄 것이고 국도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을 보여주며 목적지로 인도할 것이다. '왜 나는 남들처럼 고속도로를 타지 못했지'하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마음 한쪽에 삶의 목적이 또렷이 있고, 기상악화나 비포장도로를 이유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날은 반드시 올 것이기에 천천히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3년 만에 찾은 동해는 여전히 세찬 파도로 나를 반겼다. 양양 하조대 전망대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볼 때 어떤 말보다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태양 볕 아래 발을 담그며 만난 망상해수욕장의 파도는 잔잔했고 바닷물은 맑았다. 해 질 녘 강릉 경포호는 노을을 호수 가득히 그리고 잠잠히 담고 있었다. 해가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날이 어두워지면 어두운 대로 자연은 커다란 평안으로 나를 품어주는 듯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로 마음의 묵은 때를 벗기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어느 길로 가든, 내가 선택한 길이 나의 길이고 바다는 언제든 나를 기다려 준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불안하지 않다.

 

/양윤지 WTS아카데미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