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논설위원
▲ 조혁신 논설위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거대 IT 기업과 플랫폼사는 사용자의 활동이나 개인 정보를 긁어모아 천문학적인 이윤을 창출한다.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면 온라인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 온라인 흔적은 IT 기업에 의해 추적·추출돼 우리의 입맛에 맞는 광고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경기도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주요 플랫폼사 33개사를 대상으로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포털, 동영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쇼핑, 배달, 숙박 등 해외 플랫폼 10개사와 국내 플랫폼 23개사 가운데 3곳 중 1곳이 개인정보를 남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플랫폼사들은 임의적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 광고·마케팅 활용 미동의 시 회원가입 불가, 필수·비필수사항 일괄동의, 제3자 동의 관련 추상적 고지 등의 수법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 임의적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란 각각의 동의 사항을 구분하여 사용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개인정보처리방침 전체를 동의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광고·마케팅 활용 미동의 시 회원가입이 안 되도록 하는 것 역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물론 IT 기업과 플랫폼사들은 개인정보보호법 테두리에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IT 기업과 플랫폼사들은 인터넷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 가입 시 자신에게 유리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을 사용자에게 들이밀고 동의를 받아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용자들은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장황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구로 가득한 약관을 읽어보지도 않고 동의하고 만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쇼샤나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중남미 문명을 약탈할 때 일방적으로 발표했던 '레키리미엔토(Requirimiento)'에 빗대어 비판했다. 레키리미엔토는 1513년 공포된 스페인 국왕의 칙령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대륙의 인디언들이여… 오직 하나뿐인 신과 하나뿐인 교황만의 존재함을 선언하고 너희에게 알린다. 지체 없이 스페인 국왕의 신민으로서 충성을 맹세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레키리미엔토를 낭독한 후 원주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았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레키리미엔토란 원주민 약탈·학살에 법률적 정당성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원주민들은 스페인어로 떠들어대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목숨을 빼앗겼다. 사용자들이 인터넷과 포털, SNS,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은 디지털 시대의 레키리미엔토인 셈이다.

/조혁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