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비평은 냉철한 시민 눈 바탕돼야
▲ 누르스름한 청동(金금)을 오래 닦으면 마침내(竟경) 거울(鏡경)이 된다. /그림=소헌

가을철 맨 끝에 오는 절기인 상강霜降이 지나서 그런지 따뜻했던 날씨가 돌아선 옛 여인의 등짝마냥 여간 쌀쌀한 게 아니다. 하지만 추위가 더위를 물리쳐 내는 것은 아니다. 계절은 제각기 자기 역할을 다할 뿐이며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 더러는 사람의 일생을 ‘계절’에 비유하곤 하는데, ‘서리’ 내리는 이 시기를 50~60대에 비유할 수 있겠다.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知天命지천명) 귀가 순해지는(耳順이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송도 센트럴파크에는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길이 2km 폭 100m에 이르는 해수공원이 있다. 늦가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흠뻑 적시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는 ‘명경정’이라는 단아하게 지어진 정자가 있다. 명경明鏡(밝은 거울)은 곧 심상心相이니 바람과 물에 휩쓸리지 않는 본연의 성품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눈썰미 좋은 분이라면 금방 눈치챌 글자가 있다. 명경정에 쓰인 한자는 明(명)이 아니고 目(눈 목)이 들어간 眀(명)이다. 明(명)과 眀(명)은 같이 쓰기는 하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眀(명)은 빛이 밝은 것이 아니라 ‘눈이 밝다’는 뜻이다.

명경고현(明鏡高懸)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 사리에 밝거나 시비를 분명하게 판별하는 공정함을 일컫는 말이다.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 ‘포증’은 신비로운 거울을 하나 얻었다. 거울은 영험하였고 여기에 비추어 보아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포증은 자신이 죽은 뒤 부정한 관리가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괴롭힐 것을 염려하여 개봉부 가운데에 ‘명경’을 높이 매달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탐관오리가 개봉부를 맡았고 그는 뇌물을 통해 엄청난 재물을 갈취하였다. 하지만 결국 거울을 통해서 모든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鏡 경 [거울 / 비추다 / 본보기]

①立(설 립)이 부수로 쓰일 때는 송곳이나 끌을 뜻하는 辛(매울 신)이 된다. 잡아온 여자(女) 노예를 고문하고(辛) 첩으로 삼은 글자가 妾(첩)이며, 죄인에게 송곳으로 묵형을 가하고 마친 글자가 竟(경)이다. ②竟(마침내 경)은 음악(音음)을 마침내 끝내는 사람(儿인)으로 기억해도 좋다. ③누르스름한 청동(金)의 한쪽 면을 오래 닦다 보니 마침내(竟) 맑은 거울(鏡경)이 되었다. ④일반적으로 거울은 鑑(감)을 주로 쓴다.

 

懸 현 [매달다 / 걸다]

①県(현)은 사람의 얼굴(目)과 나무(木)로서 정확하게는 죄수의 머리(目)를 잘라 나무(木)에 걸어놓은 모습이다. ②縣(현)은 고을 어귀에 죄수의 머리(目)를 줄(糸사)로 묶어 나무(木)에 거꾸로 매달아 놓음으로써 경각심을 알리는 것이다. ③懸(현)은 죄수의 잘린 머리를 어디에 매달까(縣현) 생각(心심)하는 것이다. 縣(현)이 ‘고을’이라는 뜻으로 굳어지자, 懸(매달 현)을 새로 만들었다.

 

 ‘청동거울’은 충청북도 교육청 공무원들이 결성한 청렴 동아리다. 먼저 수신修身을 한 후 더 올곧은 공직자가 될 것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뽐내지 않는 거울의 의미를 엿볼 수 있으니 가히 칭찬할 만하다. 명경明鏡은 현상을 왜곡하지 않는 공정한 판결과 특히 부조리에 대한 언론기관의 공정한 비평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냉철하고 밝은(眳명) 시민의 눈(鏡경)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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