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논설위원
▲ 조혁신 논설위원

누리호가 미완의 성공을 거뒀다. 비록 '더미 위성'을 궤도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지만, 우리 발사체 기술을 확인하면서 우주 강국의 희망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역사적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로켓은 1958년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개발됐다. 연구소는 1959년 7월27일 '556호'라는 3단 로켓을 발사했다. 길이 3.17m의 이 로켓은 고도 4.2㎞까지 올라가 81㎞를 비행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로켓을 발사한 장소가 인천 고잔동 해안이었다. 민간에서는 인하대 공대가 처음으로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

인하대는 1959년 개발에 착수해 1960년 11월15일 IITO-1A를 완성했고, 19일 오후 3시50분께 인천 송도 해안에서 IITO-2A를 발사했다. 이어 1962년 9월29일 송도에서 로켓 4대와 10월3일 로켓 2대를 시험했다. 1965년 5월10일에도 연구용 로켓을 인천 고잔동 앞 해안에서 시험 발사했다. 1964년 10월17일에는 IITA-3A 로켓을 고도 20㎞까지 쏘아 올렸다. 두 달 후인 12월19일 IITA-4MR과 IITA-7CR 로켓을 잇따라 발사했는데, IITA-4MR 로켓 안에 실험용 쥐가 탑승하고 있었다. 1968년 4월28일 IITA-X21 로켓 발사 시험을 끝으로 인하대의 공식적인 로켓 개발은 중단되었다.

인하대 학생들은 1986년 로켓연구회 동아리를 결성하고 선배들의 우주개발 꿈을 이어 나갔다. 이 동아리는 로켓 제작에 관련한 엔진, 동체, 제어장치, 컴퓨터 프로그래밍, 연료 배합 기술을 스스로 연구하는 동아리로 유명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92년 4월 로켓 추진체를 만들던 중 폭발사고가 일어나 동아리 회원 전근수 군이 사망하는 등 여러 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에 동아리연합회장이었던 필자는 다친 학생들의 회복을 기원하며 학생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서 몇날 며칠밤을 지새웠다. 끝내 전근수 군이 생명을 다한 후, 필자는 인천으로 돌아오는 새벽 차 안에서 눈물을 쏟으며 전근수 군 장례식에서 낭독할 추도사를 썼고 학생 3000여명이 모인 장례식에서 이를 낭독한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누리호가 비록 미완의 성공을 거뒀지만 엔진 설계에서부터 제작 시험, 발사 운용까지 모두 우리 기술로 완성한 만큼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 기술은 곧 우주개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우주개발에 나설 때마다 국민의 눈길이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로 향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나라 최초로 로켓을 발사한 장소가 인천이었고, 인천의 공학자들과 학생들의 도전과 희생이 있었던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인천은 우주 로켓 개발의 시원(始原)이다.

 

/조혁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