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공과격으로 팔자를 고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원료범(袁了凡,1533~1606)일 것이다. 원료범은 중국 명나라 때 학자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도 왔었다. 요범이 젊은 시절 어느 절에 놀러 갔다가 유명한 점쟁이를 만나 장래 운명을 점쳐봤는데 “당신은 초시에 14등을 하고, 그 다음 시험은 71등을 하며, 마지막 시험은 9등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과연 점쟁이가 말한 그대로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 벼슬까지 올라간다는 것과 팔자에 아들이 없는 것, 심지어 죽는 해와 날짜까지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그 점쟁이 말대로 되는 것을 보고 인생살이는 타고난 팔자라 생각하였다.

그런 숙명론자인 요범에게 반전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운곡(雲谷) 선사라는 스승을 만나 운명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가르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태껏 사용해오던 학해(學海, 배움의 바다)라는 아호를 버리고, 이제부터는 운명에 맡기는 평범[凡]한 삶은 살지 않겠노라[了]는 ‘요범’으로 호를 바꾸었다. 이때부터 남을 배려하고 겸손해졌으며 비방해도 개의치 않을 만큼 포용력도 커졌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고쳐 처신하니까 신기하게도 옛날에 족집게 같았던 점괘들이 틀리기 시작하고, 나쁜 악운(惡運)들이 신기하게도 좋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자신감을 얻은 요범은 더욱 선악을 분별해서 잘못을 고쳐나갔으며 선행을 할 때마다 공과격에다 적어갔다. 그러자 팔자에도 없는 아들까지 얻었고, 벼슬은 더 올라갔으며, 53세에 죽는다는 것도 틀려 무병하게 74세까지 장수하였던 것이다. 그 후 원료범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 경험을 기록한 ‘요범사훈’(了凡四訓, 사진)을 후대에 남겼다. 한 사람의 길흉화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비록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혔다 할지라도 공덕을 지으면 개운(開運)해 갈 수 있다.

▲ <요범사훈>
▲ <요범사훈>

▶<주역>은 개인의 공덕보다 ‘집안 전체’로 선악을 평가한다. 흔히 한 집안의 선악을 논할 때 ‘적덕지가(積德之家), 적악지가(積惡之家)’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정확한 표현은 ‘중지곤괘(䷁)’에 나오는 다음 글이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넘쳐나고(積善之家 必有餘慶),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쳐난다(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쉽게 말해 집안의 윗대에서 음덕(蔭德)이란 씨를 잘 뿌려 놓아야 후손들이 복록(福祿)이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근현대사는 왜정시대와 6·25전쟁 등 숱한 격변의 연속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비의 쌍곡선을 넘나들었겠나? 필자도 어렸을 적에 6·25 때 어느 부잣집 5대 독자가 인민군들에게 총살을 당하기 직전, 평소 그 부잣집 윗대들의 도움을 받았던 이웃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자들도 이런 유사한 이야기를 들어 봤을 게다. 옛날에는 선악의 심판을 3대가 지난 후에 받았다던데 요즘은 세상이 빨라져 당대에 죄 값을 치른다고들 한다. 이런 선악의 인과관계를 알았기에 우리 조상들은 한마디 말에도 ‘언덕(言德)’을 붙여 적선(積善)하였던 것이다.

▶만약 여러분도 팔자를 고치고 싶으면 자기만의 공과표를 작성하여 기록해보시라.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몇 년이 흐른 후엔 어느새 좋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거기다 덤으로 자식들까지 공덕의 과실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주역은 한마디로 중정지도(中正之道)다. 즉 ‘중도(中)를 지켜 바르게(正) 살아가면 흉(凶)한 것은 피(避)할 수 있고 길(吉)한 것을 취(趣)할 수 있다’(避凶趣吉)는 뜻이다. <주역>은 ‘그런 사람에겐 하늘조차 어떻게 할 수 없으며 굳이 미래를 알아보려 점(占)을 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태일 한역(韓易)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