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선수들이 실점 후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45년 만의 메달 도전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한국 여자배구는 투혼을 불사르며 도쿄올림픽을 마무리했다.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8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3·4위전에서 세르비아에 세트 스코어 0대 3(18-25 15-25 15-25)으로 졌다.

이로써 한국 여자배구는 2012 런던 대회 때와 같은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동메달 이래 두번째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겠다는 한국 여자배구의 목표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김연경과 김수지, 김희진, 양효진 등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세대는 객관적인 전력 열세에도 이번 대회에서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는 짜릿한 반란을 일으키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한국 여자배구는 4강에서 패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진정한 승자였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마지막까지 품격을 보여줬다.

경기 후 세르비아 선수단에 '축하 인사'를 했다.

상대 브란키차 미하일로비치는 김연경에게 달려와 진하게 포옹했다. 김연경은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미하일로비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세르비아 코칭스태프들도 김연경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연경은 밝은 표정으로 승자를 축하했다.

그리고는 동료와 후배들을 다독였다.

친구 김수지, 오랜 기간 대표팀에서 함께 뛴 양효진, 김희진, 박정아 등 후배들을 차례대로 안아주고 눈물도 닦아줬다.

이어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진과 통역 등도 코트로 불러 웃으면서 '올림픽의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동안 김연경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오랜 시간 동행했던 후배들도 인사를 남겼다.

김연경과 3번의 올림픽(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을 치른 센터 양효진은 “김연경 언니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다. 언니가 세계적인 선수여서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항상 고마웠다. 언제나 내 롤모델이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연경 언니가 19살 혹은 20살 때 '대표팀 환경이 좋아지려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정말 놀라고 신기했다. 지금은 대표팀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김연경 언니가 앞장서서 변화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친구 김수지는 “런던 때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 한국이 4강에 진출하는 걸 멀리서 보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게 됐다.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함께 이룬 4강 위업을 평가했다.

김희진도 "김연경 언니 등 선배들이 후배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만들었다. 후배들에게 희망 줄 수 있는 대회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렇게 동료, 후배들의 헌사 속에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퇴장한 김연경은 어렵게 국가대표 은퇴 입장도 전했다.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늦게 공동취재구역으로 나온 김연경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뒤 작은 목소리로 “아쉽다. 사실 누구도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지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 자신도 이렇게까지 잘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경기에 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는 “국가대표로서 영광스럽고 자부심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사실상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후배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말엔 “쉬고 싶다. 가족들과 밥을 먹는 등 소소한 것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