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서 “시골 부모님댁에 유선 방송 놓아 드려야겠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예전 히트했던 광고 카피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간 시골 어르신들은 그냥 지상파 채널에서 '6시 내고향'이나 '아침마당'만 즐겨봤다. 그런데 왕년의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가 시골 마을의 TV 시청을 바꿔놓았다. 요즘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곳 저곳에서 종일토록 '전원일기'를 재방송한다. 그러니 한 동네 안에서도 '전원일기'를 맘껏 볼 수 있는 효자 아들 집과 그렇지 못한 불효자 아들 집으로 갈리는 것이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1088회나 방영된 국민 농촌 드라마다. 흑백TV로 나간 첫 회가 '박수 칠 때 떠나라', 22년 후 마지막 회가 '박수 칠 때 떠나려 해도'였다. 얘기가 펼쳐지는 양촌리 풍경은 고향을 떠나 온 이들 모두의 고향이었다. 당시 술꾼들까지도 화요일 저녁 약속이 비는 날이면 “오늘은 전원일기 볼 수 있겠네” 할 정도였다.

▶'전원일기'뿐만 아니었다. 그 때 MBC는 '드라마 왕국'이라 불렸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꼽아도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대장금'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등등 손가락이 모자란다. 이제는 '드라마 망국'으로 전락한 MBC가 지난 6월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이라는 4부작을 선보였다. 창사 60주년 특집이 '전원일기'의 전설을 과하게 자화자찬하는 다큐라니, 지난날의 영화가 몹시도 그리웠나 보다. 지상파뿐이긴 했지만 뉴스도 그 때는 MBC였다. 9시 뉴스데스크를 패러디한 코미디 '뉴스돗자리'까지 인기몰이를 할 정도였다. 1988년 8월 4일 뉴스데스크 도중 '내 귀에 도청장치가…' 라는 방송사고가 터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뉴스데스크의 성가를 반증한 해프닝이기도 했다.

▶그랬던 MBC가 요즘 글로벌 사고뭉치가 돼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이젠 'MBC 사고 올림픽'으로 부르자는 댓글도 보인다. 개회식 중계를 하다 루마니아 선수단이 입장하자 미국 영화 '드라큘라'의 한 장면을 띄웠다. 우크라이나 순서에서는 20세기 최악의 원전 참사가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을 보여줬다. 아이티 선수단 입장 때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진행자들은 “대통령 암살, 초유의 사태죠”라고 해설했다.

이런 MBC를 보도하던 미국 CNN이 점잖게 훈계했다. “올림픽 개회식은 시청자들이 친숙하지 않은 나라와 선수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임에도 한국의 한 방송은 모욕적인 고정관념을 사용했다.” 도대체 MBC의 그 발상이 너무 놀랍다. 언제부턴가 MBC가 국민을 가르치려 들면서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긴 자연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아가는데, MBC만 언제까지고 잘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MBC가 아닌, '문화방송'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