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宅配)는 '집까지 배달해 준다'는 뜻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물류용어다. 1992년 ㈜한진에서 맨 처음 시작했다. 당시 경제신문들에서는 'Door to Door 시대 개막'이라며 1면 톱기사로 처리했다. 그 이전까지는 우체국 소포 또는 정기 탁송 화물이 고작이었다. 천일_건영_대신 등 정기화물업체들의 시대였다. 화물이 많건 적건 정기라인을 운영하니 상대적으로 빨랐다. 물건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운송업체 하치장으로 찾아가 받아오는 식이다. 그래서 비오는 날 리어카를 끌고 가서 쌀가마니를 싣고 왔던 기억도 선명하다. 당시 택배 서비스가 막 시작되자 통신판매업이 제 철을 만났다. 신문 광고를 보고 전화주문을 하면 며칠 뒤 척하니 배달된다. 여름을 앞두고서는 아이들 물놀이 용품이나 캠핑 장비 등이 주력 상품이던 시절이다.

▶그 택배로 시작된 배송 산업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더니 곧 지하철 퀵 서비스도 나왔다. 당일 배송도 모자라 이제는 총알 배송, 로켓 배송 시대다. 드론 배송이나 자율주행 로봇 배송이 시작됐으니 머잖아 초음속 배송도 가능할 판이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자 배송산업도 분업화됐다. 배달앱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상품_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 여러 단계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지역배달대행이라는 업태도 그렇게 생겨난 모양이다. 그러니 이 시대 가장 핫한 이슈도 모두 배달에서 파생된다. 과거 현대중공업 파업은 국가경제에만 주름을 남겼지만 요즘의 택배 파업은 시민들에게 당장 불편을 던진다. 아파트 갑질의 피해자에도 경비원을 넘어 택배기사까지 추가된 시대다. 물류창고 화재 참사도 배달 시대의 명암이다. 경기 남부에 집중됐던 그 물류창고들이 최근에는 인천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과연 인천항 주변에는 전에 못보던 대규모 창고가 즐비하다.

▶가장 최근의 트렌드로는 '단건 배달'이 꼽히는 모양이다. 배달기사 한 명이 주문 음식 한 건만 픽업해 바로 달려나가는 식이어서 시간을 더 단축시킨다. 이러니 갈수록 배달 기사 인력이 부족하다. '배달맨' 친구를 데려오면 오토바이를 주는 이벤트도 벌어진다고 한다. 신규 배달 기사에게는 100만원을 더 얹어주는 곳도 생겨났다. 그래도 안되니 나온 대안이 일반인 배달원이다. 배달파트너, 배달커넥트, 우리동네딜리버리 등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 짜투리 시간에 배달 플랫폼에서 일을 받는 비정규 배달원이 십수만명에 이른다. 아침에 배달을 시켰던 사람이 저녁에는 배달에 나서는 배달 프리랜서의 시대다. 그래서 주부가 벤츠를 몰고 햄버거를 배달하고, 취업준비생이 자전거로 메뚜기식 배달에 나선다. 80세 노인도 용돈을 벌면서 걷기 운동까지 할 수 있다며 '뚜벅이 배달맨'으로 변신한다. 과연 단군 할아버지의 후손다운 배달의 민족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