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0차 세계대전 러일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김석구 박사가 청일전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결과 및 영향 등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두 번째 강좌인 ‘청일전쟁과 인천, 러일전쟁과 인천’이 지난 17일 오후 미추홀구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에서 개최됐다.

이날 강좌는 ‘제0차 세계대전 러일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김석구 박사가 강연을 맡아 청일전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결과 및 영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

청일전쟁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일본이 1894년 7월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경기도 안산 앞바다인 풍도에서 시작해 아산과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조선 영토 곳곳에서 이어졌다.

청일전쟁은 고종황제가 청나라에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진압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조선 정부의 학정에 시달리던 동학농민군이 고부에서 봉기를 일으키며 파죽지세로 전주를 함락하자 놀란 고종이 이를 진압해 달라며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청나라 조정은 선발대 1천500명을 아산만으로 파견하면서 갑신정변 직후 일본과 맺은 텐진조약에 따라 일본에 이 사실을 통보하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 병력 400여 명을 인천에 상륙시켰다.

청나라와 일본군이 국내로 진입하자 동학농민군과 조선 정부군은 일시 화해하고 외국군대 철수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병력을 증강해 경복궁을 점령하고 아산 앞바다인 풍도에서 청나라 선박을 공격했다.

선제공격에 성공한 일본은 공식적으로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한 뒤, 아산·성환 전투에 이어 평양, 황해해전, 압록강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중국본토로 진격해 청나라 해군기지인 여순과 위해위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여순에 거주하는 양민 2만여 명을 학살했고, 조선에서도 우금치 전투 등에서 2차 봉기에 나선 동학농민군 2만여 명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 땅에서 발발한 청일전쟁이 산동반도와 요동내륙, 타이완으로 확대되자 청일 양국은 종전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 요동반도와 대만 등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세노모세키 조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

청일전쟁은 조선 민중들이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고 당시 정부의 부패 일소와 외세 배격을 앞세우며 봉기했던 수많은 농학 농민군들이 무참하게 집단 학살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필두로 한 민 씨 일족들이 ‘시대 변화와 민중의 요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정권 유지만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결과였다. 조선 왕조는 결국 10년 뒤 한반도에 벌어진 또 다른 외세 간 전쟁인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두 번째 강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박사는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대륙세력과 일본, 미국 등 해양세력이 맞부딪히는 지형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선택지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상황도 북측은 여전히 대륙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고 남측은 해양세력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과거 구한말 우리 선조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미래에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는 지를 배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인천시평화도시조성' 공모사업으로 인천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정세일)이 주최하고 있는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세 번째 강좌는 다음달 15일 오후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아시아-태평양 전쟁과 인천‘을 주제로 이어질 예정이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