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3선개헌안이 통과되자 야당의 김영삼(YS) 원내총무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이었다. 당시 야당 지도층은 60∼70대의 노정객들이었다. 주요 회의도 당수 자택의 사랑방에서 방석에 앉아 인삼차를 마시며 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갓 마흔을 넘긴 YS가 도전장을 던지니 유진산 당수는 '구상유취'라 폄하했다. 아직도 입에서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5·16 주체들이 주력을 이룬 공화당은 30대의 김종필(JP)이 당을 이끌 정도였다. 결국 YS에 이어 김대중_이철승 의원까지 가세해 '40대 기수론'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패기에 찬 도전도 훗날 '70대, 80대 기수론'으로까지 늘어졌으니, 아이러니다.

▶밥집을 가든, 선술집을 가든 '36세 최연소 당수' 이준석 얘기들이다. '설마 했더니 역시'가 아니라, 진짜로 뒤집어져 버렸다. 당원투표 70%, 국민투표 30%라는 절대 열세의 지형을 극복하고서다.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 아니고는 설명이 어렵다. 2030, 4050뿐 아니라 6070들까지 이준석에 표를 줬다는 반증이다. 완고한 TK 지역에서조차 외면하지 않았다는 선거 복기가 나오기도 한다.

▶언론사로 등록된 매체만 6000여 개인 시대다. 직업이 '시사평론가' '정치평론가'인 말꾼들도 전성기를 맞았다. '말로써 말 많은 이들'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 그럴 듯한 얘기를 꺼내놓은 평론가도 있었다. 바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첫째는 주변 도움론이다. 기성 정치권이 잇따라 실축을 하는 바람에 반사이득이 많았다는 것이다. 5선의 중진 후보가 “동네 뒷산만 다니면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없다”고 경험 부족을 지적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대꾸가 튀어나왔다. “팔공산만 다섯 번 오르지 않으셨느냐. 수락산과 북한산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이해 못 한다.” 팔공산뿐 아니라, 무등산 대둔산만 올랐던 인사들도 뜨끔했을 것이다. 여권 대선후보는 난데없이 '장유유서'론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는 '말의 정보값' 때문이라 했다. 이준석 대표 말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엄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통과 화합” 처럼, 들으나 마나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는 애기다. 예전 신문쟁이 용어로 '야마'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2030 커뮤니티에 '어묵 먹는 정치인들'이라는 글이 보였다. 시장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는 사진 밑에 '쌍팔년도식 상투적 서민 코스프레에 신물' 해설도 붙어 있다. 이제부터 '정보값'이 없는 말, 보여주기식 서민팔이만으로는 정치권에서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