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누리는 행복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날씨가 봄날 같았다. 작년 11월 말에 한국으로 와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후 연말 연시 할러데이 기간을 고스란히 엄마와 보내고 2월 초에 돌아갔으니, 달수로는 넉달을 함께 지낸 바이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눈snow을 만났고, 겨울비와 바람부는 차가운 날씨로 종종걸음 치면서 인천 송도 거리를 같이 누비다가 홀연 사라져버린 아들. 공항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막막함으로 숨이 막혀서 깊은 호흡을 재차 하면서 마스크를 들썩여야만 했다. 든자리보다 난자리가 훨씬 심하게 느껴질거라는 걸 알았어도 막상 마주 대하고 나니 그리 간단히 정리할 순 없음이 너무 자명했다. 버스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내내 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아, 이 길을 아들하고 손잡고 같이 걸었었는데...이러면서.

미국에 있는 동생은, “언니, 대학 기숙사에 보내는 것처럼 보내면 되지 뭐. 너무 슬퍼하지 말고 씩씩하게 보내!” 이렇게 얘기했다. 사실 벌써부터 이런 상황을 생각만해도 금방 눈가를 적시던 나는 짐을 다 부치고 출국장 입구에 다가가 큰 덩치를 덥썩 안고나서 안녕을 말하는 순간까지는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리벽 너머로 들어간 아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버럭 눈물이 쏟아졌다. 인생사 만나고 헤어짐이 너무 당연한 일이건만 그리고 이미 대학에 보낸 후 거의 4년 동안 집에 돌아왔다가 떠나는 자리의 이별을 경험했건만 거의 매번 어김없이 난 눈물을 쏟는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의미가 크지 않은가. 거리차이도 그렇거니와, 아들하고 단 둘이 오붓하게 오랜 기간을 좁은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면서 지낸 적이 없었던 걸 비추어보면, 내 마음의 허전함은 물파장이 멈추지 않고 퍼져나가는 것처럼 마음의 수면위에서 지속적으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 마음을 정리하고자 할때 청소만큼 좋은 치유방법이 없다. 집에 돌아와 난 이미 정리를 대강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쓸고 닦기를 반복했다. 이불도 빨래방 coin laundry에 오가면서 모두 세탁을 했고, 저녁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삶은 고구마 두 조각을 먹었을 뿐이다.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하루 세 끼를 나누다가 혼자 먹는 것 자체가 너무 힘에 겨웠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서 지난 90일 간의 시간을 곰곰 되새기는 일을 했다. 방 한 켠 구석 허젓한 공간에의 아쉬움. 잠들녘 매일밤 서로에게 굿나잇을 건네고 사랑한다 말했던 언어가 살아나서 나를 찌르는데 도저히 잠에 떨어질 수가 없었다. 지금쯤 태평양 바다를 건너고 있을까? 매일 정한 시간에 밥을 먹곤 해서 밤 비행기로 식사가 너무 늦어지면 배고플 수도 있는데. 비행기 안이 춥지는 않을라나 기타 등등. 그러다가 새벽 한시를 훌쩍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아마도 이 같은 엄마의 애절한 짝사랑은 아들에게 닿지도 않을, 그야말로 엄마 혼자서 총총대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리사랑이라고 그러던가. 그래도 난 이 짝사랑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로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히 누릴 생각이다. 아쉬운 정(情)은 기쁨의 한 표현일 터, 다시 만날 순간에의 기다림으로 전환하면 되겠다. 아직은 다른 여자에게 넘기기 전의 내 아들임에랴. 한마디로 엄마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