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씨 측이 13일 법원에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윤 씨의 재심을 돕는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이주희 변호사는 이날 오전 10시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씨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화성사건 피의자) 이모(56)씨를 반드시 법정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자백은 증거의 왕이고, 이와 동시에 가장 위험한 증거"라며 "이 사건에서는 30년 전 윤씨의 자백과 최근 이씨의 자백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420조가 규정한 7가지의 재심사유 중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제5호)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제1호 및 제7호)를 재심청구 이유로 들었다.

박 변호사는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로 화성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이모씨가 피해자의 집의 대문 위치, 방 구조 등을 그려가며 침입 경로를 진술한 점 등을 첫 번째로 꼽았다.

또 윤 씨가 범인으로 검거된 주요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연구원)의 감정서가 취약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고, 주관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검토 결과에 대해 여러 전문가가 오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박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에 대해서는 당시 경찰이 소아마비 장애인인 윤씨를 불법적으로 체포, 감금했으며, 구타와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해 글씨가 서툴고 맞춤법을 잘 모르는 윤씨에게 자술서에 적어야 할 내용을 불러주거나 글을 써서 보여주며 작성을 강제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씨의 자백은 신빙성이 높은 반면, 윤씨의 자백은 강압수사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끝으로 윤 씨가 1∼3심까지 모두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다며 재심사유를 판단할 때에 이런 점을 고려해달라고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재심 과정은 단순히 승패 예측에 머물지 않고 당시 사건 진행 과정에서의 경찰과 검찰, 국과수, 재판, 언론까지 왜 아무도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재심청구의 의미를 밝혔다.

윤 씨는 "나는 무죄이다"라며 글로 적은 자신의 심경을 전하면서 복역 기간 및 출소 후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언급했다. 또 "어머니께 감사하다. 모든 것에 대해 희망을 주셨고, 인간답게 살라고 하셨다"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가와 연락이 두절됐다. 모친인 박금식 씨를 알고 있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에서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으나,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이씨가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 사건과 다른 4건 등 14건의 살인을 자백하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