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소설가· 전 동국대 교수
최근 인천시장이 '문화주권발표회'를 열어 문화예술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긴 가뭄 끝에 만난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

문화주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수가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져 문화의 역외 소비가 많은 것을 되찾아오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인천의 가치 재창조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예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천의 과거를 아는 인천 출신 시장이 제대로 맥을 짚은 듯해 문화예술계에 발을 넣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고맙고 기쁘다.

'인천일보' 기사에 따르면 인천을 문화성시로 만들어 지역문화의 수평을 향상시키고 서울에 빼앗긴 문화주권을 회복하며,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생활문화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예산 대비 1.9%로 전국 최하위권에 속했던 문화예술분야 예산을 내년에 2.2%, 후년에 3%로 높인다는 것이다.
계획의 대강을 보면 개항장의 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내항부두를 연계시켜 복합 문화벨트를 만드는 것이 들어 있다.

'지금보다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을 텐데 입안자들의 상상력이 부족하군.' 개항장 주변의 인프라를 보면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제 대폭 개선될 듯해 반갑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동양화학 부지의 뮤지엄파크 건설이다. 수인선 개통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용현·학익 1지구에 시민의 숙원이었던 시립미술관을 신축하고, 시립박물관을 이전해 문화예술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300만 인구에 걸맞지 않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로서 부끄러웠다. 송도 석산에 짓느냐, 어디에 짓느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청량산 밑의 시립박물관은 인구수와 시의 위상에 비해 턱없이 좁아 제대로 된 전시를 하지 못했다. 일반 시민은 박물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최근에 와서 여러 번 참신한 기획으로 시민의 발길을 끌어당기며 존재감을 크게 드러냈지만 공간이 좁아 효율의 극대화를 살리지 못했다.
송도국제도시는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로, 학익지구는 전시공간 중심으로 건설되니 도시의 품격을 한껏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천은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겪으며 성장한 해불양수(海不讓水)로 넉넉한 포용력을 가진 도시, 외부 지향의 역동성으로 꿈틀거리며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도시라는 긍정적인 특장이 있다.
그러나 헛다리를 짚는 도시, 역점사업을 많이 벌려 놓기만 하고 매듭짓기 못하는 도시, 생각이 짧은 도시, 손대면 댈수록 더 나빠지는 도시, 비인간적인 사건이 빈발하는 삭막한 도시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 그것을 긍정적인 특장으로 바꿔가기 위해서라도 문화예술의 부흥으로 도시의 품격을 올려야 한다.
조금 걱정되는 것은 아직도 인천은 빚이 많다고 하는데 국비 지원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발전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동양 최고의 콘서트홀을 갖는 것은 좋지만 전속 오케스트라도 중요하다. 한때 서울시향 다음으로 국내 2대 오케스트라로 평가되던 인천시향, 우리는 지금도 그렇다고 우기지만 세상의 평가는 다르다.

미술관은 외화(外華)로 번쩍이는 건물보다는 소장 작품의 질량과 품격에 따라 평가된다. 적어도 30년 전부터 소장할 작품을 수집하며 준비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립박물관은 연원이 깊다. 국보급 소장품은 많지 않지만 차차 확보해가고 전시 행사의 질량을 확대하면 된다. 박물관이 넉넉한 공간을 갖는다면 인천의 역사와 인천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도시가 되려면 인하대와 인천대에 예술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배출한 인재들이 모두 인천 예술계에 몸담지는 않겠지만 수십 명의 교수진, 수백명의 대학생들이 모여들게 된다. 그것은 콘서트홀과 뮤지엄파크의 상승작용을 돕고 인천 문화예술의 수평을 한 층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번에 내놓은 계획을 모두 달성한다 해도 문화주권의 회복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의 힘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인천은 서울 중심의 주변성과 종속성을 적절하게 잘 활용해야 한다. 모순이나 약점을 장점으로 발전시키는 정반합론,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문화성시의 사업이 지혜롭게 추진돼 인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