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매력은 눈(雪)이다. 짧은 시간 안에 주변을 온통 하얀색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눈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낙상사고 등은 잠시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대가다. 눈이 오면 도로 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서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더욱 안전에 신경쓰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눈(目)으로 조심해도 눈(雪)으로 인한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눈(雪)이 사라지고 따뜻한 3월이 되면 반드시 시작되는 인기스포츠가 있다. 바로 프로야...

1960년대 중반 선친은 송현동 수도국산과 이어진 '돌산'에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에서 버섯재배 사업을 하셨다. 필자가 어릴 적이라 혼자서는 무서워 끝까지 가보질 못할 정도로 그곳은 무척 길었다. 인근 동네에는 일제 때 조선이연금속(현 현대제철) 등 큰 공장에 근무하는 일본인 간부 주택이 많았다. 집과 집 사이 공터에는 작은 방공호들이 있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했던 그곳은 우리들의 아지트이자 놀이방이었다. 인천에는 여전히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뒤편 공영주차장에는 입구와 내부가 ...

중국 전국시대 얘기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격퇴하기 위해 초나라와 합종을 꾀했다. 진이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급박한 위기를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조왕의 명을 받아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된 평원군은 함께 떠날 인물 20명을 선발했는데, 한 사람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스스로 추천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받아들여 함께 초나라로 떠났다. 평원군과 진객들은 초왕을 만나 한나절동안 설득했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해 난처한 지경에 처했다. 결국 모...

"세상엔 참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아. 내 힘으로는 몇 억분의 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 내 앞에 커다란 매머드 한 마리가 있는데, 내게 있는 거라곤 달랑 돌도끼 하나뿐이고,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야. 어떻게 생각해?" 문진영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중에서 '어쩔 수 없는 일'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 같은'에 눈길이 머문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의 삶을 생각한다. 영화 '귀향'으로 돌아온 위안부의 삶, 역시 영화 '동주'로 돌아온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는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면서 촉발된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사람들은 오래전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1939년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란 영화다. 카프라 감독은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미국 시민들이 마음속으로 존재하길 바랐던 국가를 영화로 그린 사람이었다. 그의 영화 속에 묘사되는 미국의 이미지는 양심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있으며 선한 행동은 반드시 보상받는, 진실한 연민의 세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라 감독이 스크린에 투영했던 세계는 선의의 환상으...

소년 이카루스는 높이 날아올랐다. 태양 가까이까지 날았으나 밀납으로 엮은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의 날개'는 인간의 끝없는 동경을 상징한다.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 소행성의 이름도 '이카루스'다. 미궁에 갇힌 이카루스의 탈출은 모순을 전제한다. 너무 낮게 날아도 깃털은 바닷물에 젖게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 '이카루스'를 소장하고 있다. 화폭에는 강렬한 파란색 창공, 검은색 가슴에 찍힌 빨간색 심장, 노란색 깃털이 흩날린다. 이카루스의 추락을 표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평 만월산 약사암으로 봄 소풍을 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주의를 줬다. "아무데나 오줌 누지 말고, 나무 꺾지 말고, 쓰레기 버리지 말고…." 모든 말은 귓바퀴 근처에도 오지 못하다가 "멀리 가지 마라. 이 동네 문둥이한테 잡혀 먹는다"라는 말은 달팽이관에 바로 꽂혔다. '문둥이?' 개구쟁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시락을 까먹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넘지 말라는 언덕으로 향했다. 작은 고갯길로 접어드는 순간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밀짚모자에 허름한 회색 옷.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

작약도(芍藥島)는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 속한 섬이다. 2만평 남짓한 면적에 해안선 길이는 1.2km에 불과한 무인도다. 인천에서 자란 40대 이상이면 누구나 작약도에 대한 추억이 한번쯤은 있을법하다. 섬 남쪽에 발달한 해식애(海蝕崖)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어 해수욕장으로 제격이다. 여름철 송도유원지, 월미도와 더불어 인천을 대표하는 피서지로 꼽혀왔다. 작약도는 원래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는 뜻으로 물치섬(勿淄島)이라고 불렸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프랑스 함대 이름을 따서 부아제(Boisee), 1871년 신미...

민족최고의 명절은 설날이다. 설날은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들의 안부를 묻고 함께 차례를 지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 깊은 날이다. 설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비로소 두 가지가 늘었음을 깨닫는다. 하나는 체중(體重)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나이다. 어린 시절에는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설날이 되면 두 그릇의 떡국을 먹고 나이가 두 살이나 늘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있으며 반드시 나이가 늘어간다는 진실, 그것이 현재를 깨...

주(周)나라의 유왕(幽王)은 '포사'라는 후궁을 몹시 사랑했지만, 미인의 웃음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것인지 포사는 잘 웃지 않았다. 유왕은 포사를 미소짓게 하고 싶었다. 그러자 신하 중 괵석보라는 이가 국가 위급상황에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소집하는 화청지(華淸池) 앞 여산(驪山) 봉수대에 거짓으로 봉화를 올리라고 청했다. 유왕은 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여산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즐긴 뒤 갑자기 봉화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봉화가 오르자 오랑캐들이 침공한 줄 알고 제후들이 모두 군대를 이끌고 달려왔다. 유왕은 제후들 앞으로 나서 ...

유럽 대학은 대부분 졸업식을 치르지 않는다. 반면 미국 대학의 졸업식은 화려하다. 졸업기념 '쫑파티'도 열린다. 우리나라 대학은 박사학위 수여자나 수상자와 가족 정도가 참석한다. 취업을 이유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도 있다. 학자금 대출 빚은 늘어나고 있다. 청년 구직자는 60만명을 상회했다.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한 전국 4년제 일반대학의 졸업생 평균취업률은 65% 정도다. 대기업 쏠림 현상 등의 구직난에 비해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기도 한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다. 영문으로 졸업식을 'Graduation Ceremony'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