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을 가다듬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한국에서 둘째딸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워낙에 어려서부터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했던 아이라 그녀의 결혼소식은 참으로 반가웠다. 그 딸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막상 결혼하고픈 남성이 한국사람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것에 친구는 조금 주저하는 듯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내 아이들 역시 한국사람과 결혼할 것에 대한 기대가 적어서, 나는 친구에게 바야흐로 국제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가 되었음을 축하했다. 

우리가 사위 혹은 며느리를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건 무얼 의미할까.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젊음이라는 단어가 부럽고,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 일치되기 보다는 삐걱거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그래서 그로 인한 당황스러움에 점차 익숙해져 가는 이른바 인생 노년기 초입에 들어섰다는 말이겠다. 사실 지난  한 주 갑자기 발이 아파서 불편한 몸으로 하루종일 집안에서 오롯이 보내는 동안, 난 마음이 자꾸 가라앉고 도통 영혼의 세포가 깨어나지 않아 몹시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우연히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한국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노년의 삶이란, 생명연장으로 더 오랜기간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인지능력의 저하와 함께 육체의 기능이 쇠퇴하고 그로 말미암은 우울한 현실이라는 사실Fact 이다.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고, 그로 인한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고, 젊은날에 대한 회한悔恨으로 복잡해진 감정을 이겨내려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 말이다. 난 노년기라는 단어 자체가 무겁게 느껴지면서 한층 더 우울했다.

그러다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남편이 가게 직원들과 함께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려고 했는데 한명은 몸이 아프고, 다른 한명은 백신을 맞지 않아서, 또 다른 한명은 백신 1차 접종만을 했기 때문에 티켓을 그냥 날릴 상황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하루종일 플러밍 문제로 지쳐서 음악회고 뭐고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왔길래, 난 아이들에게 “얘들아, 우리가 대신 콘서트 가면 어떨까?” 딸과 아들은 별 이의없이 동의했고 우린 이미 음악회가 시작했을 무렵 집을 출발해 거의 한시간이나 늦은 시각에 Mountain View, Shoreline Amphitheater에 도착했다. 그래미상 4번 수상, 록앤롤 Rock & Roll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에 들어간 두비 브라더스는 60대 후반, 7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그들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여전해 어림잡아 1만 명은 넘게 모인듯 했다.  밤이 되면 기온이 훅 떨어져서 스웨터에 겨울코트를 걸치고 있음에도 다리  밑 부분에는 한기寒氣가 스멀거리며 들어왔다. 그래도 라이브 뮤직은 흥겨웠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백발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흔들거리는 것에 딸아이는 재밌다고 키득거린다. 요즘 아이들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음악이지만 기꺼이 동행해 준 것이 고마웠다. 한참 잔디에 앉아있다 보니 허리가 아파와서 벌렁 누웠다. 까만색 하늘에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들을 보았다.

나보다 네살 위의 지인이, 아들이 오랜만에 엄마 손을 보고선 할머니 손처럼 변한 것에 깜짝 놀라며 마음이 짠하다고, 어떻게 거친 손을 그냥 두셨느냐고, 손마사지 비용을 드릴까 하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들에게 엄마는 항상 고운 모습이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실상 손주 두 명의 할머니인데 말이다.  

어쩌면 나이로 인한 심적 변화와 갈등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들의 사랑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면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겉모습에 실망하는 대신 속사람의 모양을 흐트리지 않고 잘 가꾸면서 우아하게 노년을 이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