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에 대한 책임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건강을 챙긴다고 용을 써봐도 나이에 따른 신체적 반응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이윽고 내 몸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제발, 이제 좀 널 돌보라구! 

그저께, 저녁식사후 부엌 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방으로 들어와 두 다리를 벽에 기대어 높이 들려던 나는, 갑자기 발등 주변에 통증이 삐거덕 다가오는 바람에 ‘아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이게? 발목을 돌려보고 허공에다 대고 스트레칭을 해봐도 도무지 아픔이 가시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몸을 세우고 침대에 걸쳐 앉아 손으로 주무르기를 한참했는데도 오히려 더 아파오는 거였다. 그러다 발을 마루바닥에 대고 일어나려는데 앞으로 우당탕 넘어질만큼 끔직한 통증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전달되는 거였다. 세상에. 식구들이 잠든 상황에서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 그저 열심히 마사지를 하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빌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는데, 웬걸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긴급방문Urgen care으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엑스레이X-Ray를 찍고 발목 부근을 살펴보아도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한 통증이라서, 담당 의사는 소염제와 외부에 바르는 연고를 처방해주면서 이틀 정도 지켜본 후 발전문 닥터 Podiatrist 에게 찾아갈 것을 권했다. 

하루만에 갑자기 두 발로 걷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 상황이 낯설기 그지 없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남편은 지팡이 혹은 워커walker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아이들은 꼼짝말고 누워있으라고 성화를 댄다. 그래도 어떻게 누워만 있을까. 오른편 발가락 앞을 살그머니 짚으면서 왼편 발에 의지하면 그나마 걸을 수는 있어서 난 가족들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려고 꼼지락거린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부스러기, 휴지조각들이 거슬려서 아예 주저앉아 손으로 닦아낸다. 설거지는 모두들 돕겠다고 거들지만, 뒷정리는 영 마뜩치 않다. 이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참.

어쩌면 유난히 극성스럽게 발발거리는 내가 이젠 조금 숨을 고르면서 쉬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내 몸의 아우성일지도 모른다. 웬지 시간관리Time management를 못하면 뭔가 뒤쳐지는 강박관념이 지난 내 세월에 촘촘히 쌓여있는게 아닐까. 난 무슨 일을 계획할 때 대부분의 경우 효율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깍쟁이같이 냉정하게 판단한다. 조금이라도 미진하게 느껴지면 스스로에게 참을 수가 없어서 댕댕거린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많이 너그러워졌는가 했는데, 요즘 집안일을 하면서 시장을 본다거나 음식을 만드는 것, 청소하는 것, 피아노치는 것, 일기쓰는 것 등등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나를 볶아댔다. 심지어 건강관리를 해야한다면서 매일 한시간씩 걸었다. 일정에 뭐 하나 빠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그게 무리였을까. 아, 정말 어찌하랴. 

남편 친구의 숙모가 한의학漢醫學 박사인데 근처에 계신고로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연락을 해봤더니, 클리닉에선 너무 바빠 세심한 치료를 하기 어렵다고 집으로 오라셨다. 역시 침은 통증에 즉효인 듯 발을 딛고 서는데 한결 수월해졌다. 각도에 따라 뻐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아직 있지만, 며칠 조심해서 쉬고 나면 너끈해질 듯 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육체가 비록 껍데기에 불과하더라도, 내 영혼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살뜰하게 보살피고 관리해야할 책임이 바로 내게 있음을 깨닫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몸이 내게 말하는 소리를 비로소 듣기 시작하는 나이가 된 걸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