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로봇이란 영역으로 확대한 그의 상상력은 놀랍기보다 경이롭다.
처음 접한 볼테스V와 라이터군단으로 시작해 건담 시리즈와 마크로스. 그리고 공각기동대와 에반게리온을 보며 단순한 로봇 패싸움 영역을 넘어 로봇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탐욕이 빚은 로봇의 폭주 등으로 걱정이 많았다. 머리가 굵어지며 사람 냄새나는 과거와 현실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로봇 캐릭터는 스타워즈의 R2-D2이다.
차에 탄 남자와 소녀가 물에 빠졌다. 그 옆을 지나던 인간형 로봇이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든다. 남자는 로봇에게 소녀부터 구할 것을 명령하지만, 로봇은 남자를 건져낸다. 순간 로봇은 남자가 소녀보다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계산했다. 하지만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남자의 자책은 로봇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폭주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 <아이, 로봇>에서 답을 찾았다.
책을 펼치기 전 '로봇공학의 3원칙'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제1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이고, 제2원칙은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이다. 제3원칙은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로 정리된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80년 전 세운 이 명제를 기초해 이후 로봇 관련 책이나 영화는 이를 준용했다. “로봇공학 3원칙을 탑재한 로봇이 자아성찰로 이를 극복하고, 탐욕한 인간에 맞선다”, 대부분의 로봇 관련 창조물은 이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 로봇>은 다양한 로봇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책은 신문기자인 화자가 수잔 캘린 박사를 인터뷰하며 여러 로봇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9가지 단편에는 로비, 스피디, 큐티, 데이브, 허비, 네스터 10호, 브레인, 바이어리 등의 로봇이 나온다.
1982년에 태어난 로봇 심리학자 수잔 박사는 50년간 로봇 개발을 통한 인류의 비약하는 진화 과정을 지켜보며 “로봇은 우리보다 훨씬 깨끗하고 우수한 종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에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이 대체하는 노동세상과 로봇으로 안전해진 작업 환경, 무한 반복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로봇과 경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수잔 박사의 입을 통해 전했다.
수잔 박사는 “인간과 좀 더 비슷한 로봇이 나오면서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놓고 로봇과 경쟁하는 걸 당연히 반대하고, 이런저런 종교 집단들은 미신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반대했지요. 어리석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었지만,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아이, 로봇>은 헤어질 수 없는 소녀와 로비의 감동 스토리로 시작한다. 사유하는 로봇과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글에서는 로봇이 경고하는 끔찍한 미래를 엿볼 수 있고, 자존심이란 자아를 로봇이 인식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자신을 받아들일 경우 발생하게 될 가정법 앞에 진땀을 흘렸다. 인간에게 탄생한 로봇. 다시 로봇에 의해 뒤바뀔 인간 세상.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더욱 기다려진다. 그러기 위해 로봇의 존재를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글 쓰는 기계'라 불린 아이작 아시모프. 1992년 '외계인 아시모프가 고향 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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