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출발점 다르기에
난 패배주의자” 생각 만연
'노력하면 성공' 코리안 드림
우리 모두 정의라 배웠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은 못 해
태어나면서부터 ‘패배주의자’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만인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고, 이를 차분히 밟고 올라서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세상은 주입한다.
그런데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집단생활을 시작하며 이러한 기회의 균등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동물적 감각으로 깨우친다. 그렇게 “나와 너의 출발점이 다르기에 난 패배주의자이다”라는 생각을 평생 짊어지고 산다. 과연 내가 지탱하는 이 땅은 평등할까.
고대 그리스를 지나 17세기를 들어서며 인간은 고민한다. 최대 다수의 행복은 어떻게 이뤄질까. 최선의 개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은.
공동의 선과 개인의 선은 그렇게 늘 충돌한다. 공동 혹은 개인의 도덕적 가치 판단 앞에 이 질문은 답이 될 수도 틀릴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은 읽기 팍팍하다. 선뜻 ‘완독’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와 같은 맥락이다. 우린 제도 교육에서 제대로 된 철학을 배우지 않았다. 지혜(Philosophy)롭기 위한 ‘생각’은 금물이기에, 지식만을 탐할 뿐이었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례를 바탕으로 ‘능력주의’의 거짓을 설득하려 애쓴다. ‘세금’을 만드는 자가 절대 선이 될 수 없고, ‘세금’을 가져가는 자는 ‘패배주의자’가 아니라며 강변한다.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를 장악했다. “출신이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출신이 무엇이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우린 ‘정의’라 배웠고 읊었다. 하지만 더는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동성이 자유롭지 않다면 ‘불평등하다’고 강조한다.
또 진보라 지칭하는 ’엘리트’에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선거 유세 때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를 향해 “개탄스럽다(deplorable)”라고 말한 것은, 능력주의 엘리트에 빠진 진보의 계층 나누기의 전형”이라 지적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자유’를 좇는 보수는 전혀 자유롭지 않고, ‘평등’을 외치는 진보가 오히려 ‘불평등’하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그렇기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진보 정치권을 향해 ‘엘리트층의 거들먹거리는 문화’를 경고했고, 헤이스팅스 교수를 통해 “진보파는 계층 인지 감수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요즘 한국의 정치 풍토와 ‘딱’ 일치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현대 철학의 근간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다. ‘평등의 자유’와 ‘기회의 균등’, ‘분배의 차등’이 결국 능력주의라는 괴물을 탄생시켰고,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 속에 ‘패배주의’는 연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마이클 샌델 교수의 생각이다.
결국 <공정하다는 착각>의 도착점은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이다. 결단코 우리 앞에 ‘행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더욱 노력했기 때문에 잘살고, 청소부 김씨(천지인 노래 제목)가 헛살아서 가난한 게 아니란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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