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사회부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 중구 신포동 일대에 옛 인천여자경찰서 터를 알리는 안내판과 독립운동가 출신 전창신 경감의 기념물이 세워졌다.

전 경감은 함흥 만세운동을 주도한 열혈 여성독립운동가다. 해방 이후에는 조국 치안의 선봉에 서기 위해 경찰의 삶을 택했고 제2대 인천여자경찰서장까지 지냈다. 중구청과 인천지방경찰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안내판 설치를 추진하기 전까지 인천여자경찰서의 역사적 의미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인권이 대두되지 않았던 시절에 여자경찰서가 존재했다는 기록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여경들이 성매매 단속과 청소년 지도·보호, 여성 계몽에 나서고 여성과 관련된 사건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한 '여자경찰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성평등이 강조되는 현 시점에서 선진적이고 뜻깊다.
전 경감은 서장으로 부임하면서 경찰애육원을 설치해 전쟁고아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일에 주력하기도 했다.
제막식 현장에서 만난 인천경기여경회 관계자는 당시에도 여경이 수사해야 하는 민감한 부분 때문에 여자경찰서와 여경의 필요성이 컸다고 전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던 셈이다.

전 경감의 애국정신, 그리고 민주경찰은 일제경찰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공로 또한 기념물 제막을 계기로 세상에 드러났다. 전 경감의 차남은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독립운동 정신은 점차 잊혀졌기 때문이다.
3·1절과 광복절은 형식적으로 지나가는 공휴일이 돼버리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조차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본인과 가족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약자를 위해 애썼던 전 경감의 모습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인천여자경찰서의 역사와 전창신 경감의 업적을 통해 보다 빛날 미래를 만들어나갈 지혜와 가르침을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