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안나 경제부 기자

어젯밤 그간 몸을 뉘었던 대자리를 걷어내고 제법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선선하다 못해 조금은 차가워진 저녁 공기에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당겼다.
시간은 늘 그렇듯 흐른다. 호기롭게 결단한 새해 다짐은 작심삼일이 됐고,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다 여름을 맞이했다.

제 소임을 다한 손선풍기는 내년을 기약하며 책상서랍 깊숙한 곳에서 1년간의 기나긴 잠에 들었다. 태풍을 이겨낸 강화도 한 들녘은 여문 곡식을 자랑하며 노랗게 물든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를 바꾼다. 철마다 달라지는 자연 풍경부터 소소하게는 우리의 옷차림과 먹거리, 전반적인 생활 환경, 때로는 우리의 가치관까지 포함한다.

당연한 변화 속에서도 마땅히 그 자리에 머물고 기억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기억돼야 하며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진실한 입이 살아있어야 하며, 그 입에서 기인한 정의로운 행동들이 지속돼야 한다.
지난 7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을 때 혹자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금방 식을 것이 뻔하다"라고 단언했다. 일회성 행사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들을 쏟아냈다.
불매운동 석 달째, 그들의 예상을 깨고 여전히 우리는 생활 곳곳에 스며든 일본제품 대신 대체품을 찾는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있다.

일본산 맥주에서 국내 제품으로 갈아탄 애주가들 덕에 수입맥주 시장에서 10년간 1위를 굳건히 지켰던 일본산 맥주는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한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참교육을 위해 계획했던 일본 수학여행을 취소하고 수천만원의 위약금을 지불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번 불매운동은 왜곡된 역사관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 최근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라는 역사적 정의를 무시한 채 오히려 수출규제로 한국을 압박하는 후안무치한 일본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정의로운 행동이다.
때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오랫동안 지녔던 개인의 취향 대신 조금은 성에 차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불편하고 번거로움은 덤이다.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지금 내 손에 떨어지는 이득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할만한 귀중한 가치는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존재한다.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은 그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