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많지 않고 섬도 아닌데…그 지명은 왜?
▲ 인천·청진·포항·부산·목포의 송도. /자료제공=인천도시역사관

 

▲ 1895년 발행된 일본 마츠시마 지도, '육전국염부송도진경전도'. /사진제공=박민주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연구사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해군 군함인 송도함(松島艦). /사진제공=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운영위원장

 

▲ 인천에서 송도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 자료. 매일신보 1926년 12월16일자 기사.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고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는 나라. 한국에 대해 조롱과 멸시의 시각을 가진 그곳, 일본.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우리나라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일본을 향한 국민적 분노가 극대화된 지금, 인천을 오래도록 짓누르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송도(松島)라는 지명이다.

1930년대 인천서 처음 공식 이름이 나온 '송도'는 일본 군함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일본의 유명한 휴양지인 마쓰시마(松島·)송도)에서 차용했다는 설이 있다. 둘 중 어느 가설이 맞다고 한들 일본잔재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송도는 연수구 갯벌을 메워 만든 신도시에서 송도국제도시라는 이름으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인천도시역사관과 인천일보가 공동기획한 '없었던 섬, 송도' 2번째 편으로 송도라는 이름이 등장한 연유와 역사적 배경, 논란 등을 짚어본다.


일제 군함·미야기현 '마쓰시마' 송도 명칭 유래 기원으로 꼽혀
인천 이외 일본인 많이 살았던 다른 개항장도 같은 지명 잔존

▲인천의 송도
일제강점기 1936년 제1차 부역확장 과정에서 인천부로 편입된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에 송도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별히 소나무가 많지도 않고 섬도 아닌 이곳에 소나무 송(松)과 섬 도(島)자를 쓰게 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인천도시역사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가지 설이 유력하다. '송도함 설'과 '일본 마쓰시마 설'이다. '송도함 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일본 해군 군함인 송도함(松島艦)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일본 마쓰시마 설'은 일본의 섬지역인 마쓰시마의 한국말 발음인 '송도'를 그대로 썼다는 가정이다.

어느 것이 맞든 간에 두 가지 모두 일본과 관련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이 강제로 자기 지명을 인천에 심어놨을 가능성도 높다.

인천서 공식적으로 송도라는 지명을 사용한 때는 1936년이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이 지역을 송도로 언급하는 문헌이 존재한다.

매일신보 1926년 12월16일자 '경인간의 별천지 송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백사청송(白沙靑松)의 명승지'인 '속칭 송도'는 도로가 불편하여 탐승객(探勝客)의 발길을 끌기가 곤란하다"고 적고 있다.

인천부에서 송도로 향하는 도로를 부천군에서 보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 인천의 일부 유지들이 '송도에 유원지 시설을 경륜(經綸)한 계획도 있다더라'는 표현도 확인할 수 있다.

인천 송도라는 말이 1920년대 중반부터 통용됐고 송도 유원지 조성에 대한 논의가 1920년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송도라는 지명이 등장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한국의 송도
인천의 송도 외에도 한국엔 여러 '松島'가 있다.

해안에 송도라 불리는 수많은 섬이 존재하지만 섬이 없는데도 송도라는 이름이 붙은 곳도 많다. 인천, 부산, 목포, 포항, 청진이 대표적이다. 이 곳들은 대부분 개항장으로 일찍부터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장소다.

인천엔 송도 해수욕장과 송도 유원지가 있었고, 부산과 포항에도 송도 해수욕장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남아있다. 또 목포에는 송도 신사가 존재했었다.

▲일본의 송도
마쓰시마 섬.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만에 위치한 해안 관광지. 260그루 소나무가 무성한 작은 섬이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고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이 변화무쌍하여 예로부터 일본 3대 명승지로 유명했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많은 해수욕객이 섬을 찾는다.

일본의 송도(松島)는 바로 이 마쓰시마를 우리 식으로 읽은 표현이다.

일본 내에는 미야기현의 송도 외에 다양한 지역에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송도 지명이 존재한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경제자유구역에 박힌 '언어 쇠말뚝'
2005년 선정 때부터 '왜색지명' 논란…연수구 강행으로 결정


도시개발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인천 연수구 해안을 매운 간척 사업이 추진됐다. 없던 땅이 생긴 것이다.

신(新)도시의 법정동 이름은 또 다시 송도(松島)가 됐다. 간척지는 당시 송도유원지와 송도역 등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나 2005년 연수구는 주민여론조사 결과 '송도'를 선택한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이렇게 정한다.

이때 왜색지명 논란이 불거졌다. 인천의 문화·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본의 '언어 쇠말뚝'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2005년 8월15일 스페이스빔, 가톨릭환경연대, 인천작가회의, 인천환경운동연합,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등으로 구성된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는 성명을 내고 "식민잔재 명칭을 대물림할 수 없다"며 "松島동을 철회하는 대신 비류동 등으로 대체하자"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은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심어놓은 명칭을 대한민국의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경제자유구역'의 법정동 이름으로 사용하겠다니, 일본인들이 코웃음칠 일이요, 국가적 망신"이라고 개탄했다.

이 과정에서 '송도'가 일제시대 인천부윤(지금의 인천시장) 마쓰시마 키요시(松島 淸)의 성을 따온 것이라는 주장마저 제기되며 송도 반대 운동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당시 연수구는 '송도'를 강행했다. 행정자치부 승인을 받는 등 법적 절차를 거쳐 지명을 확정했다. 아마도 '송도'라는 이름이 갖는 브랜드 가치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의 경제자유구역 내 국제도시, 송도의 탄생이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