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신분 따라 능·원·묘 구분
120기 중 경기도 내 31기 분포
서오릉 숙종대 '궁중 암투' 주연들 묻혀
장릉 인조시절 궁 안주인 인열왕후 묘
영녕릉 세·효종비 소헌·인선왕후 무덤
▲ 파주 장릉의 정자각 앞으로 향로·어로가 나 있는 모습.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고양 서오릉 중 명릉의 정자각과 향로·어로·변로.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여주 영릉(英陵). /사진제공=문화재청

 

▲ 인선왕후가 잠들어 있는 여주 영릉(寧陵).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왕릉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품은 채 온전히 보존돼 있는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이다.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은 풍수 이론을 바탕으로 지리적 특성을 살리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물을 조화시켜 아름다운 결과물이 됐다.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은 올해 경기문화재단은 조선왕릉을 찾아가는 경기문화유산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위대한 유산인 능을 조명하고 있다. 경기도 곳곳에 분포돼 있는 능에 대해 알아보고, 왕만큼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왕후의 능을 소개한다.

경기도에 31기 능 분포
519년 역사의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존경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덕분에 조선왕릉은 훼손이 없는 세계 유일의 유산이 됐다.

왕족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 3가지로 나뉘었다. 왕과 왕후, 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능'으로 분류하고, '원'은 왕의 사친과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을 통칭했다. '묘'는 폐위된 왕이나 그 외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을 말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왕족의 무덤은 능 42기, 원 14기, 묘 64기로 총 120기이다. 이 가운데 경기 지역에는 동구릉(구리), 홍릉(남양주), 유릉(남양주), 사릉(남양주), 광릉(남양주), 서오릉(고양), 서삼릉(고양), 장릉(파주), 삼릉(파주), 영녕릉(여주), 융릉(화성), 건릉(화성) 등 31기가 분포돼 있다.

조선 왕릉의 구조는 죽은 자가 머무는 성(聖)의 공간과 산 자가 있는 속(俗)의 공간이 만나는 곳으로 그 공간적 성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왕과 왕비의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인 '능침공간'과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제향공간', 왕릉의 관리와 제례준비를 위한 '진입공간'으로 분류된다. 왕릉은 능역을 따라 병풍석, 난간석, 석수(석호, 석양, 석마), 석상, 망주석, 장명등, 석인,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간, 재실 등을 통칭하는 '상설'을 조성했다. 이 '상설'을 설치하는 목적은 후세인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보도록 하는 데 있다. 무덤에 묻혀있는 사람인 피장자의 일대기를 적은 지문은 땅속 깊이 묻기 때문에 겉에서는 쉽게 알아 볼 수 없는데 비해 상설은 쉽게 피장자의 신분을 분별할 수 있다.

조선왕릉은 북한의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여인천하(女人天下)_고양 서오릉
사적 제198호인 서오릉은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이다. 서오릉에는 창릉(예종과 안순왕후),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익릉(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 명릉(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형왕후,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홍릉(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등 5기의 왕릉과 순창원, 수경원 2기의 원(園), 대빈묘 등 1기의 묘가 있으며 왕과 왕후 9명이 잠들어 있다. 서오릉은 300여년에 걸쳐 조성됐다. 15세기 덕종의 '경릉'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왕과 왕후의 능이 조성되어 5기에 이르렀다. 특히 숙종과 관련된 인물들의 무덤이 많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을 비롯해 숙종의 왕후였던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3명의 왕후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였던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도 이곳에 있다. 또 제13대 왕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인 순회세자와 세자빈 공회빈의 묘인 순창원도 있다. 제21대 왕 영조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가 묻혀있는 홍릉과 후궁이자 추존 장조, 즉 사도세자의 생모였던 영빈 이씨의 무덤인 수경원도 이곳 서오릉에 있다.

서오릉에 있는 5기의 능 가운데 명릉에는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능이 있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이 나란히 쌍릉 형태로 있고 왼쪽에 인원왕후의 능이 단릉으로 돼 있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왕의 능, 오른쪽에 왕후의 능을 조성한다. 그러나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가 묻혀있는 경릉은 반대로 오른쪽에 왕을 모셨다. 소혜왕후의 남편 덕종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스무 살에 요절해 사후 덕종으로 추존됐다. 사망 당시 신분 차이로 덕종은 능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묻혔다.

285년 만에 공개되다_파주 장릉
사적 203호 파주 장릉은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의 능이다. 인조는 원종의 아들이며 선조의 손자로 선조 40년 능양군에 봉해지고 광해군 15년 3월에 새 임금을 세우려고 일으킨 반정이 성공하면서 경운궁 별당에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인열왕후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선조 27년에 원주에서 태어나 광해군 때 능양군과 혼인하고 인조 원년에 왕비가 됐다. 슬하에 효종, 소현세자. 인평대군, 용성대군을 낳았다.

장릉은 1635년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처음으로 파주 운천리에 능을 조성했고 1649년에 세상을 떠난 인조와 나란히 묻히면서 쌍릉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뱀의 피해가 잇따라 지금의 장소인 갈현리로 이장됐다. 파주 장릉은 비공개로 관리해 오다 285년 만인 지난 2016년 6월17일 시민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최초, 최고가 한자리_여주 영녕릉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최초의 합장릉이다. 합장릉은 한 봉분에 왕과 왕후가 함께 합장된 형태를 띠며 동쪽에는 소헌왕후가 서쪽에 세종대왕이 묻혀있다. 석물 중 망주석, 장명등, 석수, 석인은 단릉의 형태로 배치했으나 석상 2개를 설치해 합장릉임을 나타냈다.

소헌왕후는 세종의 왕비로 문하시중 심덕부의 손녀이면서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1408년 충녕군 이도와 가례를 올리면서 경숙옹주에 봉해졌고 1418년 충녕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에 오른 뒤 같은 해 왕후로 즉위하게 됐다. 소헌왕후의 부친 심온이 영의정에 올라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군국대사를 상왕(태종)이 처리한다는 불평을 하면서 대역죄로 옥사가 일어났고 이 일로 왕후 폐비 논의가 이뤄지다 내조의 공이 인정돼 일축됐다. 왕후가 1446년에 52세 나이로 영면하면서 헌릉에 장사를 지내다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으로 이장하게 됐다.

세종의 무덤인 영릉(英陵) 동쪽에는 제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이 있다. 영릉(寧陵)은 효종대왕이 1659년에 승하하면서 구리시 동구릉 원릉자리에 조성됐으나 병풍석에 틈이 생기면서 능안에 빗물이 스며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67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효종대왕의 비인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왕후의 무덤을 왕의 무덤 아래 조성해 조선왕릉 중 최초로 동원상하릉의 쌍릉 형식이 됐다. 영릉(寧陵)에 있는 회양목은 수령이 300년으로 추정된다. 회양목으로는 매우 드물게 크고 모양이 아름다워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