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민 사회부 기자

빗장을 잠시 푸는 데까지도 오랜 협의가 필요했다. 지난달 중순 인천 부평구는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오수정화조 부지를 측량했다. 정화조 부지는 미군기지 밖에 있다. 부원초등학교 옆 출입이 차단된 땅이다.
부평구는 이날 하루 측량 때문에 서울 용산까지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출입문 열쇠가 국방부에 있었다.
정화조 부지는 본 기지와 함께 캠프마켓 반환 대상에 포함됐다. 캠프마켓 반환 예정 시기는 2022년이다. 절반 정도는 '우선 반환 구역'이지만, 토양오염으로 정화 작업이 논의되고 있다. '우선'이 무의미해졌다. 캠프마켓과 따로 떨어져 있는 정화조 부지를 분리 반환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화조가 위치한 땅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인 '부평11번가'의 중심 지역이다. 부평구는 지난해부터 국방부·국토교통부와 정화조 부지 반환 협의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측량은 사전 절차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를 돌려받으면 캠프마켓 반환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전히 국방부를 설득하는 관문은 남아 있다.
반세기 넘게 미군이 주둔한 캠프마켓은 훔쳐볼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그전에는 군수공장이 자리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여기에 '인천육군조병창'이 세워졌다.
조병창은 당시 한강 이남 최대의 군수공장으로 꼽혔다. 강제동원 현장이기도 하다. 인천시는 캠프마켓에 남아 있는 건축물 118동 가운데 35동을 조병창 흔적으로 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일제와 미군이 번갈아 차지하는 동안 마음껏 밟을 수도, 둘러볼 수도 없었다.
오는 28일 부평구청에선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인천愛 독립운동과 부평 조병창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조병창과 군수시설,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부평미군기지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조병창은 오순환·황장연 지사 등의 투쟁 무대이기도 했다. 조병창과 캠프마켓을 거치며 역사의 현장은 80년째 봉인돼 있다.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