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군대 힘, 그 중심엔 백성이 있었다
▲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23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발간한 책 '장용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현호 기자 vadasz@incheonilbo.com

정조가 만든 조선시대 최강 군대 '장용영(壯勇營)'이 책으로 출간됐다.

정조와 화성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를 출간한지 1년 만에 '장용영'을 주제로 새로운 책을 내놨다.

이 책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무예도보통지'를 기념해 만들어졌다.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정조 시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그런 가운데 2017년 10월 27일,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비록 북한이 단독으로 신청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무예와 군사기록물에 대한 책 내용이 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시대가 낳은 위대한 기록유산이고 남북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다. 정조는 왜 '장용영'이라는 친위 군대를 만들고,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을까?

널리 알려진 정조의 8일간의 화성행차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한 것보다 사도세자로부터 시작하여 정조가 준비해온 군사적 능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게 숨겨진 주목적이었다. 장용영외영 군사들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신무기를 선보임으로써 화성유수부가 강력한 군사도시임을 입증했다. 또한 화성 내에 거주하는 백성들과 함께 훈련을 함으로써 민보(民堡), 즉 백성이 국방의 보루가 되는 새로운 개념을 보여주었다.
결국 정조가 화성행차에서 보여준 일련의 군사훈련은 다른 군영으로 하여금 장용영외영을 두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는 자연스럽게 정조가 추구하는 국방개혁에 대한 반대를 일소하고, 향후 외세에 대한 군사적 방어 및 공격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이 없는 군대는 의미가 없고, 군대가 없는 백성은 위태롭다. 그래서 백성과 군인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므로 백성과 군인, 그리고 관료들이 합동으로 하는 군사훈련은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정조가 화성에서 백성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한 진짜 이유다. 그리고 이는 장용영이 조선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의 백성들은 선대왕의 백성으로 살았던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조가 죽고 난 후 '정조실록'에 사관이 쓴 글이다. 이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이제는 군주시대가 아니니 거꾸로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고 기뻐할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조의 국방개혁의 보루였던 '장용영'을 대중적인 관점에서 처음으로 연구한 이 책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만주 벌판을 달리던 조상들의 기개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주적 국가 건설을 추구하던 사도세자와 정조에 대해 아는 것은 곧 남북의 평화시대를 여는 길이기도 하다.
김준혁 지음. 더봄. 368쪽. 1만8000원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장용영, 균역법 악용으로 고통받는 백성의 군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조에 대해 '문예군주', '학자군주'라고만 이야기하는데 사실 정조가 학문만 육성한 게 아니라 무예도 육성한 '무예군주'라고 할 수 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23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정조에 대한 논의는 주로 문예 부분으로만 치우쳐져 있다"며 "문(文)과 무(武)의 고른 발전과 연구를 위해서는 정조가 만든 혁신군대인 '장용영'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준혁 교수가 '장용영'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수원 화성에서 열리는 '전통무예전'에서 목격한 검술 '본국검'을 통해서다.

이후 자연스럽게 전통무예에 대한 내용이 담긴 '무예도보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이를 탄생시킨 '장용영'에도 주목하게 됐다.

특히 '장용영'이 악용된 균역법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위한 '민생안정의 군대'라는 부분에도 초점을 맞췄다.

김 교수는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는 영조가 군역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만든 균역법이 악용되자 '장용영'을 만들었다"며 "새롭게 군대를 만드는데 군대에 대한 세금을 어떻게 없앨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그동안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 후기에 지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백성들이 토지를 다 뺏기자 정조는 백성을 위한 토지를 만들고 수익의 60%를 가져가게 했다. 그동안 사실상 30%를 가져가던 백성들에게는 2배나 많은 이익이었다"라며 "나머지 세금은 '장용영'의 군사들 월급과 성곽보수 운영비 등으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현 시대에서 군대가 민생안정을 위한 군대가 되고, 백성을 위한 군대가 돼야한다는 측면에서 정조와 '장용영'은 반드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교수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태권도 시범단을 내려 보내는데 북한 태권도의 원류도 '무예도보통지'에 있다"면서 "우리 무예의 원류가 '무예도보통지'에 있고 이것을 만든 주체가 '장용영'인 만큼 '장용영'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현호 기자 vadas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