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0만시대 청사 떠나는 인천
▲ 송도에 있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은 내년 초 세종시로 이전할 계획이며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선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하나남은 해양경찰청마저 해체위기를 맞으면서 인천은 중앙기관 청사가 아예 없는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황기선 기자 juanito@incheonilbo.com
정부, 2016년까지 151곳 이관 … 지역 균형발전 조율 목적

인천 유일 해경청 해체위기 … 남은 기관들도 이전 움직임

중앙부처 소통·지원 필요 … 국가안전처 유치 주장 목소리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는 국제도시, 인구 300만 명 돌파를 앞둔 3대 도시. 2014년 인천의 명성은 화려하다.

반면 서울을 떠받치는 역할에 그치고, 중앙정부의 홀대를 받는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 속해 각종 제약을 받으면서도, 서울이라는 그늘에 가려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천이 '서울공화국'과 지방의 틈바구니에서 표류하고 있다.

단적인 예는, 중앙 행정기관 현황이다.

하나 남은 해양경찰청마저 해체 위기를 맞으면서 인천은 중앙 기관 청사가 아예 없는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있던 기관마저 지방으로 떠나는 실정이다.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속속 이전하는 상황에서 인천만 엇박자를 타는 것이다.


▲해경 해체 '날벼락'···인천만 '찬밥'

"책임은 통감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직후 해경 내부의 반응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만인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해경 해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2달여가 지났지만 여야 간 대립이 팽팽하다.

여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이견이 크다.

8월까지 공론 절차를 거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경 해체'는 인천에도 적잖은 변수로 작용한다.

2005년 송도에 자리 잡은 해양경찰청은 인천에 있는 유일한 중앙 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1일 해양경찰청이 해체돼도 신설 예정인 국가안전처를 인천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인천의 유일한 국가 행정기관인 해경이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인천에 시름이 있다"며 "국가안전처는 해경의 기존 조직과 시설을 활용해 인천에 두는 방향으로 검토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표를 의식한 선심성 발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 의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천의 유일한 국가 행정기관'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중앙 행정기관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광역 지자체 가운데 하나다.

17부 3처 18청을 비롯한 47개 중앙 행정기관 청사가 있는 광역 지자체는 6곳에 불과하다.

서울이 18개로 가장 많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표방한 세종시에 15개가 있다.

인천을 제외한 5개 광역시 중에서는 대전에만 8개의 중앙 행정기관이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고려하면 인천의 초라한 위상이 드러난다.

정부는 2016년까지 151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길 계획이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이유다.

13일 국토교통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에 따르면 인천과 정부청사가 있는 대전을 제외한 4개 광역시에 49개의 공공기관이 자리 잡을 예정이다.

부산에는 국립해양연구원 등 13개, 대구에는 한국가스공사 등 11개, 울산에는 한국석유공사 등 9개가 들어선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에도 전력산업 기관 등이 16개 생긴다.

인천은 수도권에 속해 있는 탓에 이전 후보지에서 빠졌다.

정부는 수도권에 행정 기능이 집중됐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전국 공공기관 가운데 85%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인천만 서울이라는 그늘에 가려 찬밥 신세를 당하는 셈이다.



▲ 식약청 전경.
▲'서울 위성도시'와 '힘 있는 시장론'

인천에도 '훈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지난해 초 해양수산부가 부활하면서다.

당시 "해수부가 지방으로 간다면 그동안 큰 혜택을 받은 부산이 아니라 홀대를 받은 인천이 적합하다"(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육·해·공 물류체계가 잘 갖춰진 인천도 해수부 유치 명분이 충분하다"(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정부 선택은 세종시였다.

인천 홀대 혹은 저평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인천에 터를 잡았던 공공기관은 잇따라 지방으로 떠났다.

지난해 3월에는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이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했다.

2012년에는 국립해양조사원이 부산으로 옮겼고, 경찰종합학교도 2009년 충남 아산으로 이사했다.

송도에 있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은 내년 초 세종시로 이전할 계획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선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은행 한국사무소,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 사무국 등이 들어서며 인천은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지만, 300만 인구를 코앞에 둔 도시로서의 위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힘 있는 시장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 시장은 선거 기간 내내 '힘 있는 시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천의 가치를 높이려면 중앙정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통령·중앙정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 시장의 승리는 '힘 있는 시장론'이 공감을 얻은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서울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는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힘이 통했다는 것이다.

인천이 '저평가'를 받는 가운데 '정체성' 문제도 제기된다.

지난 선거에서 유 시장은 '힘 있는 시장'만큼이나 '정체성'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유 시장은 지난 5월14일 새얼아침대화에서 "중앙에서는 인천을 적당히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천의 불행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불행"이라며 "시민이 주인의식과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존심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며 반발했지만, 사실 유 시장이 전혀 없는 얘기를 지어낸 건 아니었다.

시가 지난 3일 발표한 '인천시민 생활 및 의식조사'를 보면, '인천시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5.1%에 이른다.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75.5점에 달한 서울과 대조적인 결과다.

중앙정부의 홀대를 받고, 시민의 외면을 받는 이중의 굴레에 갇힌 셈이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지난 1997년 '인천시 도시발전과 삶의 질 확보를 위한 장기정책 구상'에서 "(인천은) 관문도시로, 또 수도 서울의 위성도시로 급격하게 커왔기 때문에 서울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사회문화적 통합성도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인천의 현주소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