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학연구원 박사의 재미있는 인천 설화 이야기 - 백령도 ①

지금 백령도가 해방되기 이전에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이었어요. 그랬다가 38선이 갈리면서 황해도 옹진군 백령면으로 됐다가 1·4후퇴 수복이 되면서 경기도 옹진군으로 됐다가 지금 인천 옹진군으로 됐습니다.

옹진군 백령면인, 장연에 김진사라는 분이 살고 있었어요. 이 분이 아들 넷에다가 고명딸이라고 그러죠. 딸이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 한분을 뒀는데 그 딸이 상당히 재주가 뛰어나고 인물이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시집을 보내야 되겠는데 재주가 뛰어나다보니, 인근 총각들이 그 김진사 딸한테 모든 면에서 져 장가를 간다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로서는 노처녀가 됐던 모양이에요.

노처녀가 돼서 있는데 그 집안에 그 뭐 좀 옛날엔 종들이 많았었잖아요. 김진사가 아끼는 종이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시집 못 간 딸하고 종하고 사랑에 빠진 거예요. 슬픈 얘기죠. 지금으로 얘기하면 신분의 격차가 없으니까 결혼해도 괜찮지만 그때 당시에는 신분의 격차라는 게 엄청났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어떻게 좀 그 시절로서는 있으면 안될 선까지도 넘어갔고 그러다보니까 김진사 딸이 임신을 하게 됐어요. 결국은 자기 손으로 죽여야 되는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종은 잡아서 죽이고 딸은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김진사는 딸을 백령도로 귀양을 보낸 거예요.

죽은 종 총각은 뭐로 현신이 됐냐면 학으로 변했어요. 학으로 변해가지고 이 여자가 백령도로 귀양 와 있는데 와서 늘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 딸이 해산을 하게 됐는데 해산을 하다보니까 음, 좀 난산이 되가지고 아마 출혈도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되다보니까 그 밑에는 뭐가 살고 있었냐면은 700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던 거예요.

이무기가 피 냄새를 맡고선 결국은 거기까지 올라간 거예요. 올라와 보니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배고픈 김에 잡아먹으려고 이무기가 덤벼든 거예요.

이를 본 학이 혼신을 다해가지고 이무기하고 대항을 했지만 학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이무기를 죽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학이 하늘에 대고 빈 거예요. 자기 여자를 살려달라고. 이무기를 죽이고 살려달라고 하늘에다 빌었는데 하늘에서 진짜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 친 거예요. 내려쳐가지고 이무기를 죽인 거예요. 이무기를 죽이다 보니까 자기도 같이 죽었죠. 결국 여자는 살았는데 그 이후 학이 여자하고 애를 살렸다고 해서 이 섬의 이름을 '백학도(白鶴島)'라고 했어요.

지금 '백령'이라는 것은 흰 날개라는 뜻이거든요. 후세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학 학(鶴)자를 날개 령(翎)자로 잘못 바꿔썼다 해서 백령도에요. 그때 벼락 내려친 데에 두문진 바위가 형성이 됩니다. 두문진 못 가보셨습니까? 거기 지금 배를 타고 나가서 보면 상당히 장관이에요. 그때 벼락 맞아서 두문진 바위들이 생겨났다는 전설, 아주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 전설을 지금 백령도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다음편은 '백령도'에 얽힌 두번째 설화가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