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값 폭락 파동 해결기미 왜 안보이나
   
 


농협 사육두수 감축·유통구조 개선책 약발 미미
사료용 수입곡물 관세 철폐 등 근본적 대안 촉구
 

   
▲ 29일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두은리 한 한우농가. 주인이 사료 대신 볏짚을 주자 오전 내내 굶었던 소들이 앞다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구제역 파동에 이은 소값 파동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축산농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쇠고기 값은 폭락한 반면 끝없이 오르는 사료값, 수입산 쇠고기 물량 증가 등으로 국산 한우의 앞날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인천지역 한우농가는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2월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한우농가 지원대책도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한우농가의 목소리가 높다.

▲"자식같은 소, 굶겨 죽일 순 없고…"

"얼마 전 큰 소 40여 마리를 정리했는데 마리당 500만~600만 원밖에 받지 못했어요.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적어도 600만 원 넘게 드는데 세금, 운송비 등 이것 저것 제하고 나니 또 적자였어요. 이러니 다들 축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지요…."

강화군 불은면 두은리에서 40년 동안 소를 키우고 있는 고영철(59)·박미희(54) 부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활력으로 넘쳐나야 할 설 연휴를 보냈지만 이들 부부의 앞엔 걱정 뿐이다.

29일 인천지역 한우농가의 90%가 몰려 있는 강화군을 찾았다.

 

   
 

두은리는 한우 100~200여 마리를 키우는 축산농가 25곳이 밀집해 있는 대규모 농장지역.

고 씨 부부는 왕방울만한 소의 눈과 시선을 맞추며 먹이를 준 뒤 소의 등을 쓰다듬었다.

열심히 사료를 먹고 있는 소들을 바라보던 부부는 이내 축사 주위를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사료 양을 줄인 게 못내 미안한 표정이다.

"사료값이 비싸다고 아예 안 먹일 순 없죠. 살아 숨쉬는 자식이나 매한가지인데요. 소들에겐 미안하지만 새해 들어 사료 양을 크게 줄였어요."

부부는 지난 1981년부터 비육우(얼룩소)를 키우다 2008년 한우로 품종을 바꿨다.

"솔직히 돈이 될 줄 알았죠. 한우를 키워 좋은 고기로 만들어 팔 생각이었는데 웬걸, 오히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어요."

송아지 한 마리 사는 데 드는 비용은 250만~300만 원. 내다 팔 만큼 어른 소로 만들려면 족히 24~30개월은 키워야 한다. 여기에 드는 사료값은 최소 300만~350만 원. 게다가 먹이용 볏집, 바닥에 까는 톱밥, 예방주사 등 부대비용만 50만 원 넘게 든다.

앞서 지난 28일 찾은 남동구 구월동 수산동. 최근 3년 새 한우농가 3곳이 축산업을 접었다. 올 들어서도 2곳이 한우 축산을 포기했다.

축산업을 정리 중인 김지훈(가명·48) 씨.

"점점 한우를 키우기 어려워 축산업을 포기하기로 했지요. 해가 갈수록 소값이 떨어져 지금은 8마리 밖에 남지 않았어요. 제값도 못 받은 채 팔려가는 녀석들을 보면 눈물부터 납니다."

김 씨는 "사람들이 언제 소를 키워나 봤나요? 현실을 알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죠. 뉴스에서 정부 지원대책을 접했는데 외려 화만 납디다"고 토로했다.
 

   
 


▲"사료값 인하 정책부터 내놔야"

농민들이 실의에 빠진 가운데 농협은 지난 12일 한우와 육우 가격 안정대책을 내놨다.

사육두수 감축과 유통구조 개선이 골자.

우선 한우 암소 도태 장려금 300억 원을 지원해 앞으로 한우 암소 10만 두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출산 경험이 있는 소를 잡으면 30만 원, 출산하지 않은 소는 50만 원을 대준다. 소의 수를 줄이고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유통단계를 종전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생산, 도축, 가공, 판매까지 총괄하는 대형 한우 프라자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유통단계 축소로 소비자 가격은 6.5% 줄이고 쇠고기 소비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축산농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사료값 안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우농민 박선형(55·구월동) 씨는 "(정책 입안자들이)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런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며 "다른 무엇보다 사료값 인하 정책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매년 사료값이 뛰더니 지난 해엔 2월과 6월 두 차례나 뛰었었다"면서 "사료용 수입곡물의 관세를 줄이면 사료값이 어느 정도 안정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승민(49) 전국한우협회 강화지부장은 "우리 협회도 지난 2000년부터 일관되게 사료용 수입곡물 관세 철폐를 주장해 왔다"며 "당장 철폐가 어렵다면 점진적으로라도 관세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 지부장은 "암소 도태 장려금도 좋지만 예산 일부를 사료비 지원이나 관세로 대체해 농가의 사료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치훈 시 농축산유통과 실무관은 "농협중앙회 인천지역본부와 함께 쇠고기 소비 촉진 운동, 강화한우 인터넷 직거래장 개설, 전문 직판장 조기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정부에 사료값 안정대책을 건의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지원방안도 적극 세우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왕수봉·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