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 … 그들은 왜 갈등하나
   
▲ 인천지역 일선 경찰들이 지난해 12월13일 연수경찰서 대강당에 모여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문제점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인천경찰은 경찰청 수사지침을 근거로 인천지검의 내사·인치 지휘를 잇따라 거부하고 있다.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


새해 벽두부터 검찰·경찰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불거진 두 사법기관의 갈등이 올해들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인천경찰은 검찰의 내사·인치 지휘를 잇따라 거부하고 나섰고 인천지검은 수사지휘 전담 검사제 도입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왜 그럴까. 근본 원인은 수사권 주체를 둘러싼 검·경의 첨예한 입장과 법 해석 차이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갈등 '왜?'

'경찰은 범죄수사를 할 때 소관 검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검찰청법 제53조)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196조)

이는 지난 1949년과 1954년 각각 제정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의 핵심 조항이다.

처음부터 검·경 관계를 상명하복의 수직 구조로 규정하고 수사 주체 권한을 검찰에게 부여한 것이다.

물론 범죄수사를 경찰의 직무로 정한 경찰청법(제3조)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제2조 제1호), 사법경찰관리집무규칙(제2조 2항)이 있었지만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라 경찰은 검찰의 보조자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도 실제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이 없고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법 제정과 맥이 닿아 있다.
 

   
 


검·경 갈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표 참조>

처음엔 잠잠하던 검·경 수사권 독립 문제는 지난 2004년 경찰 조직이 커지고 검찰에 대한 권력 분산여론이 일면서 본격화했다.

같은해 9월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회가 발족하고 10월엔 고(故)노무현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을 약속했다.

이듬해 4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검·경 수사권 조정 공청회가 열렸으나 검찰 직접 수사사건 피의자 호송 문제로 두 기관이 갈등을 빚었다. 결국 지난 2005년과 2006년 검·경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수사권 조정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말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 등 학계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 여론에 힘을 실어줬고 경찰은 지난 2009년 수사구조개혁단을 출범해 수사권 조정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후 현 정권이 지난해 7월 검찰청법 53조를 삭제하고 갈등의 핵심 조항이던 형사소송법 196조에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넣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검·경이 이 과정에서도 절충안을 찾지 못하면서 끝내 정부가 강제 조정안을 통과시켜 올해 1월부터 현 수사권 조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인천경찰 '반격', 인천지검 '관망'

새 수사권 조정 시행에 인천경찰의 반발은 예상외로 매섭다.

지난해엔 일선 경찰 1천300여 명이 수사권 조정에 항의하며 전문 수사관제(수사 경과)를 포기하더니 올해엔 급기야 검찰의 내사·인치 지휘를 잇따라 거부하고 있다.

지난 2일 중부경찰서가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인천지검에 접수한 80대 노인의 내사 사건을 거부했고, 부평경찰서 역시 인천지검의 내사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 남부경찰서는 지난 3일 전국 경찰 가운데 처음으로 검찰의 범죄 피의자 인치 지휘를 거부했다.

경찰은 현재 대통령령을 중심으로 만든 수사실무 지침을 근거로 대고 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검찰이 우리에게 수사지휘는 할 수 있지만 검찰에 접수된 내사·진정사건은 지휘할 수 없다"며 "그동안 관행처럼 내사·진정사건을 의뢰했지만 더 이상은 (접수)수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꽤 신중한 모습이다.

지난 3일 남부경찰서가 범죄 피의자 인치 전화지휘를 거부했을 당시 곧바로 공문을 보낸 점도 검찰 내부의 신중론이 작용했다.

인천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모든 수사와 관련해 경찰을 지휘할 수 있다"면서도 "내사 지휘 거부에 대한 대검찰청의 법률 검토 결과와 후속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특별히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수사권 갈등, 시민사회 반응 '냉담'

검·경 갈등을 바라보는 인천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두 사법기관의 논란이 지난해 정치 공방에 머물다 이제는 현장에서 맞부딪치는 상황으로 번지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무엇보다 경찰을 향한 비판이 거세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찰이 지금처럼 검찰의 내사 지휘를 거부한다면 애꿎은 범죄 피해자나 민원인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시민들이 무조건 경찰 도움만 받으라는 논리냐"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두 기관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온다.

전직 경찰간부는 "시민들은 아직도 검·경 모두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수사권 조정 문제를 밥그릇, 자존심 싸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 법무법인 관계자도 "수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해 시민 신뢰를 얻는 쪽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면서 "견제와 균형,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려면 검·경부터 기본 원칙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신섭기자 hss@itimes.co.kr


*수사권=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증거와 정보를 수집, 범인을 잡도록 부여한 법적 권리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법 계통 국가에선 일반적으로 검찰이 수사권을 주도하고 있고 영국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미법 계통 국가에서는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검찰이 수사 지휘권과 수사 종결권, 영장 청구권, 기소권 등을 대부분 갖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검·경의 관계를 상명하복·수직관계로 규정해 온 검찰청법 53조를 삭제·폐지하고 형사소송법 일부를 개정,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했지만 경찰은 영미 국가와 같은 완전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