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의약품 관리 이대로 괜찮은가
   
▲ 마약류사범 적발 현황 /자료제공=대검찰청 강력부  


이달 초 인천에서 병원 마취과 간호사 2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모두 병원에서 마취제나 신경안정제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 오용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지난달엔 인천 조직폭력배들이 의약품 도·소매업체로부터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빼돌려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팔아오다 경찰에 덜미가 걸렸다. 수면마취제나 신경안정제, 진통제 같은 향정은 관련법에 따른 마약류로 분류돼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법·제도보다 저만치 앞서 있다. 정부와 당국의 약품 유통·관리체계를 일대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이 거세다.


▲ 의약품이지만 중독성 있는 마약

국내에서 마약류는 코카인, 헤로인 등의 마약과 프로포롤, 아티반 같은 향정 두 가지로 나뉜다.
향정은 주로 병원에서 정신치료나 마취제로 많이 쓰인다.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원인으로 알려져 더 유명해진 프로포폴은 전신마취에 쓰이는 약물로 주로 내시경, 성형수술에 사용된다.
이 약은 맞으면 바로 잠이 들기 때문에 흔히 피로회복제나 수면제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칫 중추신경계에 잘못 작용하면 자제력을 잃거나 숨을 못 쉬어 숨지거나 뇌사에 이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식약청은 지난 2월 프로포폴을 마약류 중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했다. 프로포폴을 맞은 사람에게 강력한 충동과 갈망증세가 지속돼 마약류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아티반이란 상품명으로 불리는 로라제팜 역시 병원에서 흔히 쓰이는 진정·수면제다. 특히 갑작스럽고 극심한 불안이 생기는 공황상태를 잠시잠깐 잠재우는 단기적 처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약은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환자에게 투여되기도 하지만 치과치료나 내시경 검사, 불면증의 단기적 요법에도 흔히 쓰인다.
하지만 진정효과가 강해 사용을 멈추면 불면이나 불안증이 다시 일어나는 금단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로라제팜을 포함한 벤조디아제핀 계열 의약품은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충동을 일으킬 수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면 진정제인 미다졸람도 기관지경 검사, 위경 검사, 혈관 조영술 등 단기간 진단이나 내시경 검사에 쓰이고 중환자에게는 장시간 진정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투여되기도 하는 약물이다. 이 밖에도 몰핀보다 진정효과가 50배 강한 펜타닐이나 디아제팜, 날페인도 마취보조제, 진통제로 병원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병원 마취제 오남용 실태 심각

지난 3일과 4일 인천에서 병원 마취과 간호사 2명이 각각 집과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사용 흔적이 있는 마취제 용기와 주사기 등이 발견돼 이들이 마취제를 투약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병원의 마취제 관리의 허점을 보여준 셈이다.
병원 마취제는 유흥가 쪽으로도 깊숙이 스며든 지 오래다.
지난달 인천지역 조직폭력배들이 의약품 도·소매업체 직원에게서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공급받아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판매한 혐의로 서울경찰에 붙잡혔다. 프로포폴은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약물이다.
조폭들은 인천과 서울 일대 업소 종업원들에게 '약을 팝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연락이 오면 대포통장으로 돈을 보내게 한 뒤 택시로 배달하는 방법으로 3억원 상당을 팔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엔 인천 남구 용현동 한 모텔에서 프로포폴을 거래하던 A(31)씨 등 2명이 현장에 잠복해 있던 경찰에 적발됐다.
A씨 등은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 프로포폴 100상자를 일반인들에게 판매했으며 인천의 한 병원 관계자에게서 프로포폴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해주고 돈을 챙겼다가 구속된 사건도 있다.
의사 B(42) 씨와 의사 C(38) 씨는 지난해 4~7월 자신들이 운영하는 인천시내 병원에서 각각 유흥업소 여성 40여명을 상대로 1차례 당 30만~40만원을 받고 프로포폴을 투약해주는 방법으로 3천여 차례에 걸쳐 총 10억1천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병원 운영상 어려움이 커지자 프로포폴에 중독된 유흥업소 종사자를 수소문한 뒤 프로포폴 투약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병원에만 마취제 관리에 허점이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시중에선 일반인들이 동물약국에서 파는 동물 마취제도 별 제약없이 쉽게 살 수 있다. 시중에서 팔리는 동물마취제는 네다섯 종으로 신분증만 있으면 구할 수 있다. 성폭행, 강도, 살인 등 동물마취제를 범죄에 악용한 사례도 있다.
허주형 인천수의사회 회장은 "사람이 동물마취제를 여러 병 투여하게 된다면 심각한 신체적 이상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엄격한 관리 필요

현재 향정을 취급하는 병원이나 의약품도매상에 대한 관리 감시는 각 구별 보건소에서 1년에 1번 하는 지도감시가 전부다. 약품사용과 관리규정에 대한 교육도 매년 1회에 그치고 있다. 지도감시는 마약류에 관한 관리법률에 따라 하고 있지만 형식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천에 있는 각 구 보건소에 알아본 결과 약품이 잠금장치가 있는 보관함에 있는지, 관리대장이 있는지, 대장에 적힌 수량과 실제 보관량이 일치하는 지에 대한 검사만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인천시는 물론이고 각 구 보건소, 인천의사협회, 인천병원협회 등 그 어느 관계기관도 각 병원에서 약품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취급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의사협회 관계자는 "약품에 대한 유통과정과 관리는 각 병원마다 자체적인 시스템으로 이뤄진다"며 "협회나 보건소에선 약품관리와 사용규정에 대한 교육, 안내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병원 마취제를 더욱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 3의 감시자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천약사회 관계자는 "규정 상 마약류로 지정된 약품들은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직접 보관함에서 꺼내 주사해야 하지만 병원들이 이를 지키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항상 약품사용 유혹에 노출돼 있는 관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마약퇴치본부 관계자 역시 "약품에 대한 사용은 모두 병원 안에서 자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감시하거나 관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병원 자체적으로 경고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어 관리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범준·심영주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