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속의 이슬람, 그들은 누구인가/
   
 


대부분 파키스탄인 1천명 추산
극소수 폭력적 무슬림 탓 적대감 커져
그릇된 선입견 버렸으면

 

   
▲ 파이잔 에 마디나 이맘

"정치에 대해 묻지 마세요. 미국에 대해서도, 테러에 대해서도요." 2시간 남짓 나마즈(Namaz·이슬람 식 기도)를 끝내고 나온 파이잔 에 마디나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인터뷰 머리에 던진 말이다.

"이슬람은 그저 이슬람"이라는 부연이 이어졌다. 이슬람교를 둘러싼 세간의 묵은 오해와 폭력적인 해석들을 단번에 벗겨내는 일성과 같았다. 기자의 질문은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우문현답이 돌아온 셈이다.

9·11테러 10년이 지났다. 테러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살해된지 한 달이다. 인천에 하나 뿐인 이슬람 사원 '한국이슬람교 중앙회 부평지회'(이하 부평사원)를 찾아가 이슬람 교도들을 만났다. 그들은 인천에서 이슬람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다.

▲ 하루 다섯 번, 신과 만나는 시간

부평삼거리 대로변 한 켠에 부평사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말이 사원이지 3층 짜리 허름한 상가를 손 봐 고친 예배공간이었다. 마지드(Masjid)라 불리는 건물이다.

3층으로 오르자 마디나 이맘의 영접으로 나마즈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도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양말조차 신지 않았다. 신발은 한 층 아래 2층에 모두 벗어뒀다.

사뭇 경건했다. 나마즈 중간에 들어갔는데도 1시간 이상 기도와 전례가 이어졌다.

나마즈가 막바지에 이르자 회당에 모인 신도 100여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이 끝없이 반복됐다.

나마즈가 끝나자 서로 서로 껴안고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았다. 신도들의 얼굴에 환희와 평온의 표정이 떠올랐다.
 

   
 


마디나 이맘과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마침 신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금요일에 오셨네요. 어떤가요? 생소하지요?" 성의(聖衣)를 입은 채로 자리에 앉으면서 마디나 이맘이 운을 뗐다.

그날은 '주마'라고 불리는 금요예배 날이었다. 교인들이 1주일 중 가장 많이 모이는 때다.

이슬람 교인들은 예배당에 가지 않아도 각자 하루 다섯 번씩 나마즈, 기도시간을 갖는다.

▲ "빈라덴은 빈라덴, 이슬람은 이슬람"

이곳에 와서 기도하는 신도 대부분은 파키스탄에서 온 신도들이라 했다. 파키스탄, 지난달까지 오사마 빈라덴이 살던 나라다. 파키스탄에서의 빈라덴 사살은 오랜 세월 미국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이슬람 세계와도 유대가 두터운 파키스탄의 '이중적인' 처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2001년 9·11 테러와 10년 만의 빈라덴 사살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마디나 이맘이 한 동안 말을 멈췄다.

"답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빈라덴은 빈라덴'이라고요. 한 국가가 다른 나라 사람을, 국제재판도 없이 그렇게 죽이는 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이슬람교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물론 우리나라(파키스탄) 정부야 이번 일에 신경을 안 쓸 수 없겠지만요. 저에게 정치에 대해서 미국과 테러에 대해서 물어봐야 답이 안 나옵니다.(웃음) 전 성직자이니까요. 이슬람은 이슬람일 뿐이지요."

이맘다운 '정답'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슬람의 근본정신은 알라(하나님) 안에서의 사랑과 평화입니다. 한국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독교하고 똑같다고 볼 수 있지요. 기독교의 이름으로 테러와 전쟁을 벌이는 게 잘못인 것처럼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 그들의 기도는 엄숙하고 진지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절과 암송, 묵상.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그렇게 신과 만난다. 인천 부평구에 자리한'한국이슬람교 중앙회 부평지회'회당에서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다.

▲ 이슬람은 사랑과 평화

현재 인천에 사는 이슬람권 국가 사람들에 대한 통계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대부분 파키스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설 정도만 있다.

마디나 이맘이 교인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파키스탄에서 건너와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1천명 정도는 될 거에요. 거의 100% 이슬람 교인이고 대부분 남자들이고요. 여기 부평사원에 나오는 파키스탄 교인들은 100명쯤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직업은 다양합니다. 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는 교인이 가장 많지만 가게를 열어 개인사업을 하는 이도 있고 전문직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라고 했다.

한국에서 가장 자주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적대감, 이른바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20세기 이후 한국에는 기독교, 특히 강한 개신교 전통이 사회문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이래저래 파키스탄 이슬람 교인들의 일상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짐작이 드는 대목이다. 마디나 이맘과 함께 앉은 파키스탄인 김 아스가칸(39)씨에게 물었다. 김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우리 성씨를 얻은 귀화 한국인이다.

김씨는 "과거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 파키스탄 사람에 대한 혐오감 비슷한 느낌을 종종 받았어요. 옷감 원단을 거래하던 때인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적대감이 상당한 걸 접하고 충격이 컸지요. 이슬람이 상당부분 잘못 알려져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인 범죄자가 일부 있다고 한국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듯이 이슬람도 마찬가지에요. 이슬람의 폭력성이 아니라 극소수의 폭력성"이라고 말했다.

▲ 색안경 벗어달라

마디나 이맘이 부연설명을 얹었다.

"어느 학자는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 했는데 틀린 말입니다. 아스가칸씨가 말했듯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그런 데서 생겨요. 다시 말하지만 이슬람은 이슬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서구 검단의 한 공장에서 용접일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인 알리(39)씨도 평소 생각을 말했다. 알리씨 역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넉 달 전 딸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다 같은 유일신교이고 궁극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그렇듯 알라를 믿는데 차별이 있을 수 없지요. 한국에 온지 올해로 벌써 10년이 됐네요. 오래 있다보니 요새 들어 우리나 한국인이나 다 같은 사람이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라고 했다.

대화를 나누던 사무실 바깥에서 예배를 마치고 길로 나온 교인들이 다시 포옹을 주고 받고 있었다. 이를 쳐다보던 마디나 이맘이 이슬람교의 '정신'에 대해 말했다.

"하나의 신과 하나의 교리, 하나의 예언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신은 알라, 하나의 예언자는 무함마드이지요. 우리는 이렇게 봐요. 모두가 어떤 종교를 믿든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모든 전쟁과 갈등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교리에요. 이슬람에 대한 색안경이 벗겨졌으면 좋겠네요."
/글·사진=노승환기자 berita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