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법원 판사 이진관


 

   
 

축구경기 심판과 같은 존재

얼마 전 형이 원고, 동생이 피고인 사건이 있었다. 형이 법정에 나와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안 갚아서 소송까지 하게 됐습니다. 현금으로 주었고 동생이라 차용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 말이 사실이니 판사님이 알아서 돈을 받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동생도 법정에 나왔으나 형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해서인지 전반적인 법지식이 높아져서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변호사 없이 법정에 직접 나오는 당사자 중에는 법률, 판례, 소송절차까지 꼼꼼히 챙겨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천수답 짓는 농부가 비 오기만을 바라면서 하늘 쳐다보듯 판사에게 모든 것을 바라면서 법원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축구경기의 심판과 같은 존재이다. 축구 심판은 전·후반 90분 동안 경기가 규칙에 따라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시간이 다 지난 후에는 골을 많이 넣은 쪽의 손을 들어 줄 뿐이다.

심판이 어느 한쪽에게 이렇게 공격하라 저렇게 수비하라 조언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판은 경기와 같아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다만 판사는 재판진행결과에 대해 법에 맞춰 결론을 낼 뿐이다.

또 판사가 법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다. 시간이 이미 흘러 지나가버린 이상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를까 과거 그 자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통해 합리적으로 과거를 재구성할 뿐이다.

본인에게 주요한 과거사실이라면 그 흔적도 잘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과거의 흔적들이 없다면 판사라 한들 그 과거사실을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앞에서 본 사건에서 형이 동생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판사로서는 돈을 빌려준 형에게 "법원에 제출할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서 공격의 기회를 줄 뿐이고 돈을 빌려주었다는 형이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차용증, 증인 등을 법원에 제시, 판사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결국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

과거사실과는 다르지만 현재에서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그렇게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단지 심판에 불과하고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 볼 뿐이다. 판사는 원고도 아니고 피고도 아닌 제3자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