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 열매'키워온 공동모금회 대수술
   
▲ 지난해 세워진'사랑의 온도탑'.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온도탑 재활용 및 장부 조작 의혹을 받으면서'비리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벌써 연말. 날씨가 쌀쌀해지며 곧 사회각처에서 성금과 온정이 답지할 터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공식 모금집행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내부 비리로 시민의 뭇매를 맞았다. 공동모금회의 본래 취지인 '사회복지 증진'을 무색하게 했다는 평도 안팎에서 나온다. 일단 여론은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동모금회 조직·인사 쇄신안에 따라 변화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시민에게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공동모금회 직원들의 목소리도 높다. 이제 시민의 눈은 공동모금회 내부를 향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어떤 조직인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998년 시민의 성금을 필요에 따라 공정하게 관리·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복지법인이다.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가 정치적으로 성금을 이용한다는 비판과 꼭 필요한 분야에 성금이 배분돼야 한다는 고민으로 세워졌다. 지난 1997년 제정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과 내부 정관,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에 따라 운영된다.
공동모금회는 법에 따른 '유일한' 지위를 가진데다 정부의 감독을 받다보니 법정기구와 민간기구의 중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직원 임용은 내부 정관에 따라 결정하지만, 정작 정관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재산을 늘릴때도 보건복지부의 감독을 받는다. 내부 감사는 물론 정부기관의 감사도 받고 있다.
운영의 자율성도 작은 편이다. 시민의 성금을 관리한다는 특성때문에 작은 부분까지 법과 정관에 정해져 있다. 법에 따라 공동모금회가 직접 펼치는 사업은 복권 운영 정도다. 나머지 공동모금회의 역할은 들어오는 성금을 관리하고, 사회복지관련 기관에 성금을 배분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직원 급여와 사무실 유지비 등에 쓰이는 운영비는 성금의 10% 안쪽에서 결정된다. 운영비가 성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5~25% 내외인 미국의 공동모금회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모금액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천674억, 2천702억, 3천318억여원이고, 배분액은 같은 기간 2천413억, 2천607억, 3천35억여원이다. 수입과 지출은 모금과 배분, 기타 사업 및 운영비를 계산하면 매년 같다. 공동모금회의 취지상 수익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려면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공동모금회 직원은 민간 기업 사원과 같은 신분이다. 정규직 직원은 246명이다. 연봉은 1급부터 7급까지 직급에 따라 2천여만원에서 6천여만원 사이에서 결정된다. 4년제 대학졸업자는 5급으로 채용되고, 연봉 2천500여만원을 받는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복지 분야에서 비교적 높은 연봉과 안정성을 이유로 공동모금회를 지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공무원법을 준용하는 직원 징계, 성금이 늘어나면서 과도해진 업무량, 공무원은커녕 일반 기업보다 못한 복리 후생으로 내부 직원의 원성도 사고 있다.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회 직원들이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내부 구조에 비리 여지 있어

현 공동모금회의 빡빡한 내부 구조에도 일부 비리의 여지는 있다. 최근 터져나온 비리들은 성금을 관리하는 사무처가 관련됐다. 공동모금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회와 중앙, 지회와 지회 사이에 인사교류를 하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오래 근무한 사무처 직원들이 배분금을 받는 지역기관이나 업체의 표적이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모금회 인천지회에서 일어난 '사랑의 온도탑' 사건이 대표적이다. 온도탑을 재활용하면서 매년 1천만원을 들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 사업부장은 지역에 살고 있는 친인척을 거쳐 탑 제작 업체를 선정했다. 이 사업부장은 인천지회에서 장기간 근무한 사람이었다.
지회에서 이러한 비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상급자는 지회장 정도지만 이도 여의치 않다. 지회장은 무급에 상근하지 않는데다 업무가 서류를 결제하는 수준에서 머물다보니 사무처 구석구석을 파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시간적 여유와 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지역 명망가가 지회장에 오르는 경향도 한몫하고 있다.
성금배분을 심사하는 배분위원회와 배분을 최종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에 '이해관계'가 얽힌다는 지적도 있다. 각 위원회는 사회복지 전문가 등 각계 지역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배분위원들이 이해 관계에 따라 사업 내용을 결정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반대 목소리는 묻히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인천세계도시축전 입장권을 사달라며 들어온 기부금 6억6천100만원이 배분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위해 성금이 쓰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올해 초 한 대기업이 푸드마켓 설립 용도로 기부한 19억원도 선거법 논란에 휩싸였다.


▲보건복지부 쇄신안과 내부 자정능력 기대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쇄신안에는 조직 통·폐합, 인사 교류와 부서 근무정년제, 시민 감시기구 설치 등 강도 높은 비리 대책이 들어있다.
먼저 공동모금회 16개 지회 중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 6개 지회가 3개 지회로 통합된다.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히기 위한 조치다. 인사교류는 특정 지회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지역 유관단체와 이해관계자와 유착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됐다. 특히 부서 근무정년제의 경우 한 직원이 돈을 '만지는' 회계 부서에 2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시민 감시기구는 '국민참여청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금 및 배분 과정을 확인하고 사업 보고를 받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시민들도 돈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세부사업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회계 내역이 공개된다.
공동모금회도 내부 회의를 통해 방안을 모으는 중이다. 지회장 소집 회의 및 직원 토론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유리·박진영기자 erhist@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