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초승달 지역'을 따라서2-3 오천년 동서교류의 요충지'알레포(Aleppo)'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길이 있다.
길은 점점 길게 뻗어나가 사람이 오가고(人流) 물건이 오가는(物流) 통로가 되었다. 인체의 혈관처럼 퍼진 길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그곳에는 인류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있다. 이 흔적이 역사를 묶고 문명을 창조한다. 문명의 역사도 길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길이 있었기에 발전해 온 것이다. 이러한 길은 누구나의 관심거리다. 특히, 대동맥과도 같은 대로(大路)를 차지하는 것은 곧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인류역사의 무수한 전쟁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길 차지에 다름 아니다. 길에 '황금'이 있기 때문이다.

 

   
▲ 오스만투르크 시대인 지난 13세기에 세워진 중동 최대 규모의 알레포 시장. 지금도 여전히 넘쳐나는 물건과 상인들로 북적인다. 건설 당시에는 하루 3천마리의 낙타가 드나들 정도로 번성했다.


이런 면에서 실크로드는 최대의 금맥(金脈)과도 같은 곳이다. 역사상 모든 제국은 실크로드를 차지했다. 제국의 번영과 발전이 실크로드처럼 뻗어가길 바랬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이 있을 수 없듯 실크로드 도시들도 영원히 번성할 수 없었다. 수많은 부침(浮沈)속에서 생존의 길을 찾지 않으면 길은 곧 풀밭으로 변하고 새로운 길이 뚫리기 때문이다.

 

   
 

팔미라가 로마제국에 대항한 것은 생존과 번영을 넘어 제국을 만들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 무모한 갈망이 팔미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팔미라의 멸망은 실크로드 대상(隊商)들로 하여금 북쪽으로 길을 틀게 하였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인 알레포가 팔미라를 대신하여 동서무역로를 연결하는 상업중심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알레포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알레포를 가려면 레바논과 시리아에 걸쳐 있는 안티레바논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산을 넘으면 드넓은 평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지대'로 알려진 베카계곡이다. 밀 수확을 끝낸 평원은 다른 경작을 위해 다시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그야말로 한눈에 보아도 비옥함이 넘쳐난다.
시리아 북쪽에 위치한 알레포는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번성했다. 이는 비옥함을 바탕으로 지중해와 유프라테스강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알레포는 고대부터 외침(外侵)에 많이 시달렸다. 히타이트,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 아랍, 몽골, 오스만튀르크 등 수 많은 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알레포는 요충지였기에 번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상업도시로 번성한 알레포의 흔적은 오늘날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알레포 성채부터 대사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suq)이 그것이다. 알레포 시장은 13세기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세워진 중동에서 가장 긴 시장으로 상점이 늘어선 골목의 총길이가 30㎞에 이른다.
알레포가 상업중심도시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에는 동서를 오가는 대상들의 하루 평균 낙타 수만 해도 3천여마리에 달했다.
시장 안에는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인 카라반싸라이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번성기 때에는 68개의 숙박업소가 있었다. 당시 알레포 시장은 금·은·보석, 향수, 비누, 옷감, 향신료, 식료품 등 국내외의 모든 상품이 부분별로 특화돼 있었다. 그래서 장님들도 냄새만 맡으면서 장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알레포 시장의 거래규모는 당시 이집트 카이로 시장의 규모를 훨씬 능가하였는데, 카이로에서의 한 달간의 상품거래량이 알레포 시장에서는 하루거래량에 불과했으니 실로 중동 최대의 상업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레포의 절름발이가 인도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최대의 상업도시 알레포를 오가는 상인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있었는가를 입증하는 말이다.
알레포가 다시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각광받은 것은 이 지역을 아랍이 차지한 7세기부터이다. 그리고 10세기에는 예술과 과학,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 알레포 상징인 시타델. 알레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50m의 높이로 건축돼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유서 깊은 도시가 그렇듯이 알레포도 신·구시가지로 구분된다. 구시가지는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우마이야 대사원과 성채, 대중목욕탕과 대상들 숙소 등의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알레포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알레포의 상징과도 같은 성채인 시타델은 11~13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그 높이가 50여 m에 달한다. 알레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시타델은 요충지인 알레포를 지키는 요새였다.

 

   
▲ 시타델의 화려한 내부 장식.

해자를 끼고 웅장하게 축성된 시타델은 입구가 오직 한 곳이어서 입구를 봉쇄하면 그야말로 난공불락인 성채가 된다. 그래서 이곳을 차지한 모든 민족과 국가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시타델을 증개축(增改築)하여 사용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가히 인류가 도시를 만들고 수천 년 동안 하루도 폐허가 되지 않은 채 이어져 오는 것은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도시를 아끼고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의 혼이 면면이 배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인천도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도시다. 인천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아시아 실크로드를 장악해야 한다. 신(新)실크로드의 주역이 되어야만 한다. 실크로드는 과거의 길이 아니다. 미래까지 발전을 멈추지 않을 현재의 길이다. 이러한 실크로드에서 인천이 금맥이 돼야 한다. 동북아 허브를 넘어 화수분처럼 황금을 쏟아내는 세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


시리아=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조태현·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