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4주년 맞은 한글날'마츠시마(松島)'송도 이대로 좋은가


송도(松島)는 일제가 이름붙인 지명이다. 일본말 '마츠시마'로 발음되는 송도 지명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뒤 사용한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천시는 지난 2005년 6월15일 행정자치부 승인을 언도 신도시 명칭을 '송도동'으로 확정했다. 시는 첨단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와 대내외적인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송도라는 지명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뜻 있는 지역인사들은 하루빨리 인천 본래의 지명인 '먼우금', '아암도'나 '외암도', '황해'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도를 비롯해 인천에서 현재 쓰이는 지명 가운데는 일본식 표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9일 564돌을 맞은 한글날에 인천의 대표브랜드인 송도(松島) 지명을 점검한다.
 

   
▲ '송도함'은 일본제국주의 3경함 가운데 한 척으로 동학농민운동 이후 수시로 인천항을 드나들던 4천t급 순양함이었다. 청일전쟁 때는 연합함대 기함으로, 러일전쟁 때는 제3함대 제5전대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대만 마공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하며 370명 군인 중 270명이 사망했다. /사진제공=조우성 인천일보 객원논설위원



송도 한자표기인 松島는 일본말로 '마츠시마'다. 마츠시마는 일본 미야기(宮城)현 중부 센다이만 연안에 있는 260여 개의 섬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 곳엔 일본의 국보와 문화재가 많이 있으며, 일본 삼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이 송도란 이름이 한국 곳곳의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1913년 부터로 알려졌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이후 자신들의 명승지인 송도(松島)를 한국 곳곳에 마구잡이로 갖다 붙였다.
이희환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는 "1913년 부산에서 일본 거류민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부산시 서구 진정산 동쪽 해변을 해수욕장으로 개발하면서 이 명칭이 처음 사용된 듯 하다"며 "포항에서는 일본인 지주 오오우찌 지이로(大內治郞)가 분도의 백사장을 대여받아 소나무를 심어 가꾼 뒤 1920년대 들어서는 분도라는 고유지명 대신에 아예 송도로 지명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는 "1931년 이곳에 해수욕장이 개장했는데 포항 송도해수욕장이 그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의 송도유원지 역시 마찬가지다. 송도유원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공백사장이다. 1937년 일본 자본인 동경철도주식회사는 경기도 미곡을 수탈하고 일본인의 내륙 진출영역 확대를 위해 수인선을 개통하며 송도유원지를 함께 만들었다.
동아일보 1936년 4월15일자와 매일신보 1937년 7월4일자는 '1936년 4월12일 200만 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창립총회를 개최한 송도유원주식회사는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 일대를 송도라 부르며 해수풀과 조탕·식탕·보트장·아동유희장·경마장·스케이트장을 갖춘 근대식 유원지로 개발해 1937년 7월20일 정식 개장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이 개설된 곳은 '인천부읍지'에 기록된 능허대가 있던 자리다. 능허대는 백제가 인천을 통해 중국과 교류할 때 드나들던 해안이다.
송도유원지가 생긴 1930년대 중반 이전까지 발간된 여러 지도에서도 '송도'란 지명을 찾을 수 없다는 게 향토사학자들의 말이다. 송도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10월 인천부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부터다. 당시 부천군의 일부였던 옥련리를 인천부에 편입하면서 지명을 '송도정'(松島町)으로 바꾼 것.
조우성 인천일보 객원논설위원은 "인천의 송도라는 지명은 1930년대 일제 총독부의 행정기관인 인천부가 나서서 심어놓은 노골적인 언어의 쇠말뚝"이라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일본의 군함 가운데 '송도함'이라는 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는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운양호'를 포함해 청일·러일 전쟁 때 참전해 승전한 전함, 순양함, 장갑순양함, 구축함, 수뢰정의 이름을 지명에 마구잡이로 갖다 붙였다. 특히 군국주의 일본이 자랑하던 '삼경함'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의 3대 절경인 '삼경'의 이름을 군함에 붙인 것이다. 일본의 3대 절경은 미야기현의 송도(松島), 교토의 교립(橋立), 히로시마의 엄도(嚴島)를 가리킨다. 일제는 이 3경의 이름을 딴 순양함 3척을 삼경함으로 부르며 해군의 자랑으로 내세웠다.
송도함은 3경함 가운데 한 척으로 동학농민운동 이후 수시로 인천항을 드나들던 4천t급 순양함이었다. 청일전쟁 때는 연합함대 기함으로, 러일전쟁 때는 제3함대 제5전대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대만 마공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한다.
송도호은 침몰한 지 28년이 되던 1936년 인천부 문학면 옥련리의 정명으로 부활한다. 송도란 이름의 섬이 없던 인천에, 그것도 육지 한 가운데를 '소나무섬'으로 명명하며 일제는 자신들의 군국주의 전승을 기념한 것이다. 인천은 지금 일본이 제국주의 야욕의 도구로 활용한 군함의 이름을 인천의 도시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 송도신도시 전경.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일본식 표기에 대한 개정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우성 위원이 발견한 1945년 12월23일자 '대중일보'는 '8·15해방 이후에도 아직 거리에는 가증스럽고 더러운 왜색이 일소되지 못하고 국치적인 정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한심스러운 일이었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 당국은 정명개정위원회를 조직하고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정'(町)을 '동'(洞)으로 고치고 '정목'(町目)을 '가'(街)로 개칭하기로 하고 이를 1946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때 송도정도 옥련동으로 바뀌지만, 인천은 여전히 송도란 이름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에 대해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은 '먼우금신도시', '아암신도시', '외암신도시', '황해신도시'를 비롯해 머리를 맞대고 얼마든지 좋은 이름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한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