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의 그림책읽기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윤영선 글 ·전금하 그림 /문학동네

"엄마는 왜 텔레비전 못 보게 해? 나도 텔레비전 맘대로 보고 싶단 말이야. 왜 나는 텔레비전 보는데 엄마 몰래 봐야 하는 거냐구. 내 친구들은 엄마랑 밤늦게 까지 같이 본다는데 엉엉"
우리 딸이 텔레비전을 보면 왜 안 되냐고 해요.
근데요, 그 말이 그냥 물어보는 게 아니라 막 울면서 말해요.
아이가 울면서 대들면서 말하니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예요. 여지껏 우리민지는 엄마인 저한테 울면서 대든 적이 없었거든요. 민지가 울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걸 보니 드디어 민지도 사춘기가 시작된 거예요.
우리 집엔 딸이 둘 있는데요. 지금 중학교 2학년인 큰딸 민정이때도 그랬고 민지도 이러는걸 보니 사춘기가 시작된 거 맞네요.
민정이 때는"엄마, 애들이 나보고 너구리라고 놀려. 나 학교 가기 싫어"하면서 막 울었거든요. 그때가 중학교 1학년 4월이었어요. 벚꽃이 눈물처럼 지는 때였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바람은 제법 맵지만 오늘도 벚꽃이 저렇게 눈처럼 날리는걸 보니 4월이네요.
민정이과 민지는 태어난 나이는 3살 차이인데 사춘기나이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거 같아요.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외돌토리

외톨이는 아니에요.
나는 그냥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심술꾸러기

어떤 때 친구들은 나를 피해 도망가요.
내 장난이 너무 심하대요.
친구들이 웃는 게 좋아서 그러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에요.

응석받이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엄마 옆에 있는 게 편해요.

(중략)
울보

화가 나거나, 무엇이 잘 안될 때
나는 눈물이 나요.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기란 나에게 정말 어려워요.

이말 저말 그동안 가슴에 꼭꼭 쟁여둔 서운한 말들을 울며 말하며 불며 말하며 막 쏟아내던 민지가 조용하내요.
"혼자 있게 해줘"하며 조용히 방문 닫고 들어가던 우리 작은딸 민지.
텔레비전만 못 보게 했다고 저렇게 울지 않았을 테지요.
미안한 마음에 민지 방밖에 깨금발로 서서 문에다 얼굴대고 조심조심 말했어요.
"민지야, 엄마가 미안해. 니 말 안 들어줘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런데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확 열리며 민지가 하는 말
"정말? 엄마? 뭐든 다 돼? 그럼 나, 라면 먹을래."
으이구 어쩜 너는 느이 언니랑 식성도 똑 같냐. 아토피라 먹음 안 되는데 하며 궁시렁거리는 내 앞에서 민지는 국물까지 깨끗이 비었어요. 우리 민지의 사춘기는 그렇게 라면 한 그릇과 시작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