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의 그림책 읽기/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와 함께 읽는 책
▲ '내가 좋아하는 것' -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책 그릇

"뭐 할라고?"
"예, 할머니 아이들한테 책 읽어 주려구요."
"책? 안사요. 읽지 마요."
완강한 거부다. 할머니께서 드러내놓고 싫은 표정을 지으셨다. 아예 손사래까지 치신다.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 이런 걸 언행일치라고 하지 아마도.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이럴 때 기운 빠지지 않으려면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할머니, 저 책 파는 사람 아니에요. 책만 읽어 드릴게요."
"아, 됐어요. 읽지 말라니께."
대놓고 하지 마라신다. 난감. 젊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책읽어주면 아이들이 책 좋아하는 아이가 된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전 안 읽어줘요."
(아이구, 잘 했어요.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좋은 줄 알면서 왜 안 읽어줘요. 할 수도 없고. 얼굴을 보니 아프고 더운데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가란 표정이다.)
이럴 땐 아이들과 친해지는 게 수다. 할머닌 필요 없다는데 아이는 책 앞으로 막 다가온다.
(흐흐 신난다, 거봐요, 할머니)

얘가 바로 나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건…

"윤지는 과자 좋아"
첫 장을 펼쳐 읽자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와, 나도 과자 좋아하는데. 윤지는 무슨 과자 좋아해?
"짱구, 할머니도 짱구 좋아해. 그치? 할무니"
윤지 말에 무표정한 할머니 얼굴이 살짝 풀리는 것도 같다.

그림 그리기랑
자전거타기
장난감 갖고 놀기랑
옷 입기 놀이
나무에 오르기랑
공차기


윤지가 그림책 두 권을 읽고 병실을 나서는 내게 뽀뽀를 해주었다. 쪽~. 으아 좋다. 이 맛 때문에 내가 낯선 사람 앞에서도 씩씩하게 책을 읽는 거다. 책읽어주기 전과 읽고 나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다르다. 환하게 웃는다. 무장해제 웃음.
"저그, 선상님 잠깐 저 좀 보드래요."
돌아보니 아까 그 할머니시다. 책 읽지 말라던 윤지 할머니.
"어째 젊은 양반이 얼굴이 허여벌건게 히마리가 하나두 없디야. 과자 좋아한다믄서. 이거라두 먹을랑가."
할머니 손에 짱구 한 봉지가 들려있다.
아 맛있는 세상.
"할무니,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