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말까지 밀린 임대료 정산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리 하겠습니다."

건물 주인이 단호하게 통보하고 간 바로 다음날, 사무실을 비워주라는 한통의 송달우편을 받고 암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2000년 그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 힘든 역경을 견디어 왔는지 나 자신 대견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고통스럽고 찌들었던 몸과 마음과는 달리 내면의 한 귀퉁이에선 넘치도록 충만한 기운이 전류처럼 흐르면서 내 사전에 절망은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오 십 여년, 그 연륜 만큼이나 많은 내 인생의 역사는 과거라는 추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숱한 기억들 중에 역학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뛰어든 약 5년 가까운 세월의 파란만장했던 기억이 가장 처절하게 떠오르는 시절 중에 하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영혼이 어떻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절망을 모르는 내 영혼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그 근원을 찰을 수 있겠다. 모르긴 몰라도 운(運)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된다. 아마 미래에 대한 솟구쳐 오르는 희망이란 욕망이 없었다면 절망이란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많은 시간을 소진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숱한 역사들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 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세속적인 부(富)와 명예, 그리고 금전에 대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많이 고뇌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시달리면서 투자한 많은 시간들이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십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고통의 언덕을 넘어 경제적 풍요로움을 어느 정도 누리며 살고 있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지금에 이르러서야 힘들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의 가치 기준을 한 차원 높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나간 몇 년간 연이어진 고통과 시련은 인격 형성을 다듬기 위한 신(神)의 각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나쁜 궁합으로 인해 www.yejiye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