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단지 인근에 위치한 음식점들은 어느 곳보다 '입소문'을 많이 탄다. 1시간 남짓한 점심 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는데다 입맛 까다로운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맛집'은 그래서 특별하다.

국제업무단지 월드게이트 1층 이마트 옆에 위치한 서경도 이 곳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곳 중 한 곳이다. 한우 전문점 서경은 서울의 서쪽에 위치한 영종도에서 착안돼 '서경'이라는 이름으로 인천공항 근처에 터를 잡은지 올해로 5년 째다. 서경에 가면 최고급 횡성 한우의 진한 맛과 '어머니'의 손 맛이 그대로 베어 있는 김치찌개를 즐길 수 있다.

제주도에서 직접 잡아 올린 갈치로 만든 갈치조림도 고깃집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찾는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005년 9월, 문을 연 서경은 서울에 이은 2호점이었지만 이 곳을 운영하고 있는 유정민(38·여) 사장이 올해 초 서울에 있는 1호점을 정리하면서 유일한 '서경의 맛'을 볼수 있는 특별한 곳이 됐다.

유 사장은 "가게를 확장해 나가는 것보다 작은 규모라도 맛과 정성을 다해 찾는 이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조용하고 식당 근처가 탁 트여 있기 때문에 고기의 맛과 음식의 정성을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아 벌써 영종도 사람이 다된 거 같이 이 곳이 좋다"며 웃음을 지었다.


"한우 아니면 이 가게 드리겠습니다"

▲깊은 한우 맛의 자신감

퇴근 길, 삼삼오오 모인 일행은 서경을 들어서자마자 서경표 한우 생갈비와 꽃등심을 시키기 바쁘다.
색이 선명한 한우는 굽기도 전에 모양만으로 찾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전국이 들썩였던 지난해 겨울, 서경도 3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문을 닫는 고깃집들을 보는 것도 내 일처럼 힘겨웠다.
그러나 서경이 내건 자신감과 맛을 끝까지 믿고 찾아와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처음 터잡을 때의 다짐을 지킬 수 있었다.
당시 '한우가 아니면 이 가게를 드리겠습니다'·'한우가 아니면 외제차를 사 드리겠습니다' 등의 문구를 내걸며 서경은 힘들 때일 수록 맛과 정성을 고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이어갔다.
입에서 살살 녹는 쇠고기의 가격도 직접 횡성에 가서 고기를 공수해오면서 중간 마진을 최대한 줄여 4인 기준으로 12만원 선이면 맛있는 횡성 한우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최근 횡성 한우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 등장했으니, 바로 '볏집 통 삼겹살'.
초벌구이 한 통 삼겹살을 볏집 위에서 구워 먹는 맛은 어릴적 향수를 불러 일으켜 중·장년층에게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서경 유정민 사장은 "볏집 통 삼겹살을 도입하기 위해 2천만원을 들여 기구를 구입했고 짚불놀이라는 전문 업체에서 볏집 등을 공수 받고 있는데 숯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볏집이 건강에도 좋고 어릴적 향수까지 불러 일으키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마 손 맛' 그대로 … 점심 밥도둑

▲서경표 김치찌개와 갈치조림

오전 11시,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서경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고깃집에서 보기에는 이색적인 광경이지만 서경의 점심은 매일 저녁 시간 만큼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김치치개와 갈치조림.
칼칼한 김치찌개 맛의 비법은 주방에서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유정민 사장의 어머니 외에 아무도 모른다고.
매콤한 찌개에 맛깔스런 밑 반찬은 어머니의 손 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서경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인 갈치조림.
20년째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홀로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낚시광' 유정민 사장의 아버지가 직접 공급해주고 있는 갈치는 어머니표 양념과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앙념이 깊게 베인 통통한 갈치 한 점을 얹어 먹는 밥 한숟갈의 맛을 즐기다 보면 어느 새 갈치조림 '단골'로 출근 도장을 찍게 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제공되는 점심 메뉴지만 저녁 시간대 고기를 먹는 손님들에게는 어머니표 김치찌개를 공기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
김치찌개와 갈치조림의 가격은 1인분의 8천원으로 예약을 하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먹을 수 있다.
/글=홍신영기자·사진=박영권기자 blog.itimes.co.kr/cubshong





"새벽녘 횡성서 직접 한우 구매"

■ 인터뷰/ 유정민 서경 사장



서경을 꾸려 나가고 있는 유정민(38·여) 사장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일일이 단골 손님들과 안부를 주고 받으며 찾는 이들 하나하나의 밑반찬까지 챙기며 24시간이 모자란 하루를 보내는 그지만 서경의 문을 열 때부터 꼭 빠뜨리지 않는 일은 횡성 한우를 직접 사오는 일이다.
유 사장은 "새벽에 횡성으로 출발해 거의 한숨도 못 자고 고기를 가져오고 있는데 맛있게 드시는 손님들을 보면 피곤함도 잊게 된다"며 "직접 확인하지 않고 먹어 보지 않으면 안되는 성격이라 몸이 피곤해도 매번 내가 직접 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횡성 한우를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육질 자체가 갖고 있는 깊은 맛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는 '골드 미스'지만 유 사장은 천상 '여장부 장사꾼'이다.
그는 "무역업을 하다 가족들의 권유로 고깃집을 시작하게 됐는데 하면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가게를 늘리거나 2호점을 낸다는 욕심보다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그래도 어머니 고향이 함경북도라 통일이 되면 어머니 고향에 서경을 꼭 내고 싶다"며 웃음을 지었다.
유 사장은 자신의 든든한 오른팔과 왼팔이 되 주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도 남다른다.
그는 "바다와 낚시를 사랑해서 제주도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싱싱한 갈치를 공급해 주시고 어머니는 어릴적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준 손 맛을 그대로 서경을 찾는 손님들에게 제공해주고 있어 두 분이 있기 때문에 서경이 운영되는 것"이라며 "지난해 건강이 안 좋아져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렸는데 항상 딸이 하는 일을 믿고 옆에 있어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라며 애틋한 정을 나타냈다.
유 사장만의 '서경 단골' 관리법은 작은 것으로 큰 감동을 선물하는 일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는 꽃꽂이에 특기가 있어 단골 직장인들의 사무실이나 회사에 꽃꽂이로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직접 담근 술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항상 '한우 홍보'가 더해져 주변에서는 유 사장을 걸어다니는 '한우 홍보대사'라고 부를 정도다.
끝으로 그는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맛과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시름이나 걱정을 잊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서경을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달래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깊은 맛과 정성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홍신영기자 (블로그)cubs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