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칼럼
성명이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성(姓)은 조상으로 물러 받은 혈통을 말함이고 명(名)이란 자의(字意)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낮에는 표정이나 제스처를 통해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뜻을 전달할 수 있지만, 밤에는 어두워 제스처나 표정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입으로 이름의 소리를 불러야만 서로 뜻이 통하고 의사 전달이 되는 이유로, 저녁 석(夕)자에 입구 구(口)자를 써서 명(名)이라 한 것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夢)은 고구려를 건립하면서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고,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하여 부여씨(扶餘氏)라 하였으며,
신라에는 박(朴), 석(昔), 김(金) 3성의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또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은 황금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김씨라고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姓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문화에 일정한 영향을 받은 이후로 고구려에서는 건국초기인 1세기 무렵, 백제에서는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신라에서는 6세기 진흥왕(眞興王) 때부터 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실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고구려에서는 고씨, 백제에서는 여씨, 신라에서는 김씨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을 가지게 된 사람이 각각 그들 혈족의 시조가 됨으로써 고려 중엽부터는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도 성이 일반화 되었고, 이처럼 고려시대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성은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거의 모든 평민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성(姓)과 명(名)은 구별되고 있다.

성이 혈족집단을 의미한다면 명은 개개인의 고유한 명칭이라 할 수 있어, 특히 우리나라에서 명(名, 이름)은 항렬자에 따르는 것을 관습으로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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