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10
 미스안과의 조우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이고 상황이었다. 군복무할 때 만난 여자를 군인들에게 쫓기면서 또 다시 만났으니까. 그것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내가 말없이 앉아 있자 미스안이 주방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뭐 좀 먹지 않을래요?” “글쎄요. 자다가 일어나서.” “그럼 음료수라도?” “음료수라면 한잔 주십시오.” “내가 여기서 이런 장사를 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죠?” 미스안이 음료수를 컵에 따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그럴 거예요. 나도 사실은 이런 쪽으로 돌 생각은 없었어요.” “그럼 무얼?” “나 사실… 거기에 피신 차 갔던 거였어요.” “피신하다니요?” “나도 최병장님처럼 학생운동을 했거든요.” “미스안이 학생운동을?” “그래요. 나 이래봬도 전력이 꽤 화려해요. 물론 중요수배자 명단에도 올라 있고요.” “그건 금시초문인데요.” “미처 몰랐죠? 내가 그런 걸 하리라고는.”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거예요.” 미스안 은 이렇게 말하고 음료수가 담긴 컵을 나와 유키코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며 생각했다. 정말로 미스안이 운동권학생이었는가를. 그러나 그녀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운동권이라는 느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술집을 전전하거나 다방을 돌며 일하는 여자일 거라는 느낌뿐. 그러나 어떤 면으로 보면 그녀의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의 얼굴 한편에서 우수와 고뇌에 찬 표정이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민주화운동의 본거지라는 광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에 대한 소문 또한 그녀의 말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한때는 야학을 했고, 학생운동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아무튼 미스안은 알다가도 모를 구석 일색인 여자였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미스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최병장님을 만나서 반갑네요.” “나도 그렇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꺼림칙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죽었으니까. 더구나 그녀는 그 사건이 끝나자마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곳을 떠나버렸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나의 제대 말년은 그녀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니, 그것은 엉망이 아니라, 혹독하고 가혹한 제대의식이었다.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남은 제대일자를 영창에서 보냈으니까. 그것도 이등병으로 강등당한 상태에서.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창문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유키코가 음료수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미스안이 유키코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참한 아가씨 같은데… 안됐군요.”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진압군에 좇기다가 부상당한 걸 구해준 것뿐이니까요.”
 “아무튼 막 굴러먹은 여자 같지는 않네요.” 미스안 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그때 출입문 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미스안이 몸을 돌이켜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세요?”
 “저희들입니다. 동현이 친구들.” “아, 잠깐만 기다려요.” 미스안은 긴장을 풀고 안으로 잠갔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건장한 청년 서너 명이 다방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