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6
 (제90회)
 
 그들 모두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유키코와 나는 그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위험스럽고 불안전한 곳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서로와 서로의 이익이 상충되어 부딪치면서 불꽃을 튀기고 있는 이 현장으로부터. 나는 어둠에 잠긴 시가지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삼촌의 식당으로 찾아가려도 이곳에서는 너무 먼 거리였다. 더구나 유키코가 짐을 풀었다는 숙소는 아예 시 외곽 쪽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통금이 선포된 상황이었다. 지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는 누구의 손에 죽는지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 창고라도 찾아봅시다.”
 “창고요?”
 유키코가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 그것은 웃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이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소리 죽여 울고 있는 그녀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한참 만에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내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한국을 사랑했어요.”
 “……”
 “또 이곳에 무척 오고 싶었고요.”
 “……”
 “저는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었거든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두컴컴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 이방인으로 치자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사람들과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모습을 하고, 또 다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물론 이방인적 요소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즉 이 도시의 사람들처럼 격렬하고도 도전적인 눈빛을 하지 않은 것도 그랬고, 투쟁의지로 불타오르는 적개심이 없는 것도 그랬다. 물론 진압군이나 계엄군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정부쪽의 요원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나와 유키코에게는 그들에게 존재하는 적개심이나 투쟁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투쟁의지는커녕 무언가를 향해 저항하겠다는 마음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를 이방인 취급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그녀가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고국을 찾아온 교포에게 잠자리하나 제공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물론 어떤 집이든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 잠을 잘 곳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 중도 아니었다. 비록 한 도시가 소란에 빠지고, 통제 불능의 혼란 속에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찾아봅시다. 어딘가에는 쉴 곳이 있겠지요.”
 그녀는 말없이 나를 따라나섰다. 그녀 자신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곳은 일본이 아니고 한국땅이었다. 그것도 계엄령이 선포된, 무분별하게 쏘아대는 총격전 현장이었다.
 
 “어때요, 괜찮죠?”
 우리는 뒷골목을 뒤지고 다닌 끝에 빈 다방을 하나 찾아내었다. 그곳은 다방이라기보다는 생맥주집에 더 가까운 업소였다. 즉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맥주 장사를 하는 집이 분명했다. 다행스런 일은, 다방 주인이 홀을 비우고 출타했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밖에서는 연신 총을 쏘아대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들이 즐비한 상황이니 장사가 될 리 없었다. 우리는 다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쉬기로 했다. 물론 주인이 오지 않는다면 하룻밤을 묵어갈 수도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