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2
 시민군은 이미 칼빈 소총과 수류탄, 기관총 같은 화기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들의 눈빛은 활활 타올랐고,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날 오후에 일어났다. 총을 든 시민군이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하려 했을 때 총성이 터졌던 것이다. 그 총성은 시민들 가운데서 들린 것 같기도 했고, 경찰서를 방어하고 있던 진압군 쪽에서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총성과 함께 시민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함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심상치 않은 게 아니라, 이곳에 있다가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가까운 골목을 향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아, 이걸 어쩌지?”
여자의 급박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여자는 무릎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총성은 계속 들려오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건물 옥상에서는 계속해서 총알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물론 시민군도 이에 뒤질세라 격렬히 응사했다. 시가지는 이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스.”
여자는 일본인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일본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서 왜 이런 일을 겪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도 젊디젊은 여자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나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골목 안쪽으로 뛰었다. 그대로 뛰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구나 조용하기만 했던 시민군도 진압군에 맞서 총격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달렸다. 그리고 온몸에 땀이 흥건해 질 때쯤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맙습니다.”
여자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떠듬거리며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나는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자는 약간 갸름한 얼굴에 창백하도록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일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나는 여자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피하며 말문을 열었다.
“일본인 같은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내 말에 그녀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저 조선인이에요.”
“조선인이라고요?”
“네.”
“그럼, 재일교포?”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여자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한국인 냄새가 풍긴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상류층 특유의 냄새가. 단정한 양장 차림에 흰 셔츠를 얌전히 받쳐 입은 것과, 유행이 지난 고급 구두를 반듯하게 신고 있는 것도 그랬다. 물론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모습은 일본인을 닮아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이미지나 모양은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긴 왜?”
나는 총소리가 들리는 대로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했다.
“친척을 찾아왔어요.”
“친척?”
“네.”
“무슨?”
“강제 징용 때 끌려간 조부님 친척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제야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왔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난 것이었다. 그것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유혈극의 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