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분리되는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면 모든 얘기는 달라지게 된다.
삼계론(三界論)에 보면 이 우주의 어느 세계 이상부터는 남녀간의 성 분리가 없다하니 정말로 남녀가 없는 세계가 있다면 애증의 고통이 없을 것이다.
성경에도 하늘나라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단언한 예수의 말씀이 있는 걸 보면, 모든 종교적 탐구의 극치는 애욕의 번뇌로부터 벗어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이 확실하다. 여하튼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은, 인류는 이 성문제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끊임없이 개발하는데 노력하여 왔다.
문제는 성의 만남이 가져다줄 것 같은, 잘 만나진 이성 간에서 나타나는 행복과 희열에의 갈망이다. 이 갈망하는 마음은 무엇이며, 애증의 눈물 흘리는 마음은 무엇인가.
무의식적으로 성을 갈망하는 데는 실로 완전해지고 싶은 희망이 숨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불안전한 두려움에서 완전하고 싶은 충동이 성의 밑바탕이라 할 때 그 분출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갖은 노력을 다한다.
남녀 성기 구조의 차이가 오늘날 잘못 무장된 성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삶의 조건을 망가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호기심의 만족이 성(性)이 아니며, 아기의 출산이 性의 목표가 아님에도 사람들은 무분별한 성의 탐닉을 부채질 하고 있다.
우리의 성문화가 언제부터 대담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요즘의 실태를 보면 성인용품 점이 공공연히 길가에 자주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성욕은 자기 발견의 무의식적 충동이다. 그래서 성욕을 무시하면 행복의 갈구도 무시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성은 음양의 특성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나누어 가졌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이기 때문에 간접 카타르시스 되는 성의 승화는 인류가 숙제로 풀어야 할 필연적 과제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편견에서 벗어날 때 진정으로 성에 대한 안목도 살아난다고 볼 수 있다. 음과 양 반쪽 에너지 편중현상이 실제 이해와 더불어 음양 이전의 태극으로, 명상적, 철학적, 자기고찰적, 깊은 이해관계로 이루어질 때 진정한 성(性)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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