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햇발이/거미줄 보다 가늘때/맨드래미 백일홍 어지러히 쓰러진/담 모퉁이에 발저며 서서/높디 높은 창공으로/수정 웃음을 방송하나니/청초한 맨도리/담담한 빛깔/수줍은 적료/가벼운 애수/그리고 또하나 그윽한 동경/…/몽롱한 황홀속에/은방울 소리의 명랑/나무 나무 잎사귀/붉은 빛으로 상기되노나/퇴색이란 어느 세계의 말/네 꿈은 아직도/앞날이 변화롭다’
 이희승의 ‘코스모스’이다.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꽃이 여럿 있지만 무리짓듯 가을 들길을 장식하는 꽃은 1년생의 국화과 풀 코스모스이다. 코스모스는 한번 씨를 뿌리면 꽃지고 씨앗이 그 자리에 떨어져 이듬해에 다시 피워 야생화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멕시코가 원산지라고 하듯 엄연히 외국에서 귀화한 꽃이다. 그래서 우리꽃에 관한 서적에는 빠져있다.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라고 하지만 7월에도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 전에는 잘못 피운것이라고 여겼는데 아마 개량종이 있는 듯하다. 꽃의 색깔은 주로 흰색과 분홍색이나 붉은색과 복숭아색이 있고 최근에는 노랑색도 있다. 그런가하면 분홍꽃을 노랑 코스모스 잎에 대면 꽃색이 금방 주황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한번 시험해 보아야겠다.
 그런데 한들거리는 자태에 비해 코스모스는 거창한 이름을 하고 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우주’와 ‘질서’의 뜻을 가지고 있다. 아직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혼돈 즉 카오스와 대칭되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처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망망하게 펑퍼짐한 상태였다. 이것을 혼돈이라고 하는데 제우스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더이상 혼돈의 세계가 아니었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가 모두 제자리를 잡은 안정된 세계 곧 코스모스였다.
 어느덧 9월에 들어선지도 한주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여 가을이 익어간다. 공원이나 들길에는 코스모스가 수줍은 듯 한들거리는 청초의 물결이다. 코스모스는 가을과 추석 그리고 운동회 등 향수를 불러내는 고향의 꽃-가을이 오는 길목에 그리움으로 그곳을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