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스런 하천 복하천(福河川)은 이천시 관내의 복판을 흘러 남한강으로 유입하는 한강의 지류이다. 멀리 광주시와의 경계에서 발원 남동류하다 덕평 벌에서 동북으로 급하게 틀어 이천읍을 지나 여주땅의 옛 이포나루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복하천은 곡창 이천의 농사를 돕고 상수도원이기도 한 이천의 젖줄이었다. 우기가 아니면 넓은 모랫톱이지만 장마 들면 범람하여 바다가 되어 인근은 곧잘 육지속의 섬이 된다.
 이 복하천을 예전 삼국시대에는 남천이라고 불리웠으며 남천은 이천의 옛 지명이기도 했다. 지금은 복하천을 경계로 이천읍과 부발면이 나뉘어지지만 남천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신라가 맞서 있었다. 북쪽의 설봉산과 남의 효양산에 성을 쌓고 남진하는 고구려와 북진을 노리는 신라가 이곳에서 겨루고 있었던 것이다.
 남천이 이천이 된데에는 고려의 건국과 연유한다. 고려가 신라를 병합한 이듬해인 936년, 그러나 남쪽에는 아직도 후백제의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이를 토벌하느라 왕건이 남정중에 남천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침 홍수로 도하가 막막했다. 그때 이천의 호족 서목(徐穆)이 앞장서 인도하여 무사히 건너게 했다. 그후 송악에 개선한 왕건이 썼다는 ‘강을 건너도록 도왔다’는 뜻의 ‘利涉大川(이섭대천)’ 글귀를 줄여 利川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건을 도왔다는 서목은 서신일의 조카로 전해지는데 서신일은 이천서씨의 시조이며 993년 글안의 대군을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徐熙)선생은 손자가 된다.
 이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복하천변이 날로 황폐하더니 최근에는 이천시의 생활쓰레기가 매립되었음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근 공장들의 폐수와 가축농가의 분뇨방류로 찌들었었는데 장마철의 쓰레기 매립장 침출수가 더욱 한강수 오염의 원인을 제공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자의 뜻으로는 복스러운 하천이라는 복하천-복하천변이 다시 다듬어지고 맑은 물이 흐를때 이름높던 곡창 이천의 명성도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