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초빙교수/국문학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가 내분에 이어 이번에는 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가열 조짐을 보이면서 또 한번 심각한 국론 분열이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의 수도 이전에 대한 강한 의지와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이념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이미 지역 간의 갈등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김선일씨가 납치되어 살해되기까지 외교부와 국정원,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보여준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 태도에서는 국가의 외교 안보 시스템의 무기력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실로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럽고충격적인 상황으로 인해 허탈감과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열자>에 나오는 초나라의 첨하라는 사람은 홑 명주실로 낚시줄을 삼고, 벼이삭 수염으로 낚시바늘을 삼고, 싸리나무 가지로 낚시대를 삼고, 낱알을 쪼개어 미끼로 삼아서 수레에 가득 찰 물고기를 백길이나 되는 연못의 거센 물결 속에서 낚아올렸는 데도 실이 끊어지지 않고 낚시바늘도 펴지지 않았고 낚싯대도 휘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초나라 임금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여겨 첨하를 불러 물어보니 그는 마음 쓰임이 집중되고 손의 움직임에 균형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열자>의 ‘탕문’ 편에는 이와 관련하여 균형만 잡을 수 있다면 머리카락으로도 얼마든지 무거운 것을 매달 수 있다는 뜻의 均髮均縣(균발균현)을 강조하고 있다. 즉 균형 내지는 조화만 유지할 수 있다면 머리카락의 힘으로도 수만 근의 무거운 물건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국가 운영에 있어서 통치자가 지녀야할 조건으로서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이기도 하다.
지역의 균형 발전과 수도권 인구 분산이 우리에게 놓여진 시급한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이없다. 그러나 수도 이전 반대가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물적 기득권 지키기에서 비롯되었다면 수도 이전 반대는 명분 없는 이기적인 주장으로 절대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측의 반대 이유와 근거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봐야 한다. 만일 이전 비용에 비해서 얻는 효과가 미비하다든지 오히려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 이면에 자신들에게 돌아올 손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면 수도 이전은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더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듯이 일부 보수 언론들이 언론개혁으로 인해 기득권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행정수도까지 옮겨지면 그야말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완전히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한나라당과 손잡고 배후에서 수도 이전 반대를 조종하고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반면에 수도 이전이 국가의 장기적인 균형 발전과 서울과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목적보다 이러한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보수 세력의 이념으로 이어져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뿌리째 뒤집는데 상징적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면 수도 이전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전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과 비난을 노대통령이 뒤집어쓰게 될 것이 뻔하다.
수도 이전의 열쇠는 전적으로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왜 대통령이 이토록 수도 이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대통령의 입장이 과연 냉철한 균형의식에서 나온 것인지 우리도 냉정하고 절제된 균형감각을 가지고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판단이 정말 옳다면 우리는 이념에 관계없이 이번만은 대통령의 뜻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특히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쪽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이 계획을 철회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노대통령을 구하는 길이며 우리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길이다.
대통령만이 붕괴된 국가 시스템을 복구하고 국가와 국민을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지지에 앞서 더욱 더 엄격한 균형감각으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해 가도록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 대통령이 살아야 국민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현실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김준기/인천대 초빙교수 국문학